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뒹굴뒹굴 굴러다니면서 책 읽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 옛그림책이나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지요. 그러다보니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를 종종 다녀옵니다. 경성으로 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오기도 하지요. 윤동주 시인 이번에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들러 윤동주 시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시인은 27년 1개월의 삶을 목전에 둔 상태였지요. ‘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 주동자로 연류되어 수인( 囚人)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시인의 이름은 사백 칠십 오(四七五)번이지요. 시인은 10cc의 액체가 든 주사를 맞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주사를 맞는지 물어보아도 늙은 의사는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주사를 맞고 나면 늙은 의사가 시키는 암산을 해야 하지요.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난 뒤로는 간단한 암산조차 할 수 없어 무척 곤혹스럽습니다. 시약실을 나오면 시인처럼 주사를 맞기 위해 서 있는 줄이 기다랗습니다. 모두들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으스스 몸을 떱니다. 햇살을 보지 못한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입고 있는 죄수복처럼 파리합니다. 꽉 말라버린 얼굴에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온 모습이 흡사 유령 같습니다. 대부분 치안유지법에 걸려 체포된 조선인 유학생들이지요. 윤동주 시인의 삶을 그린 영화 '동주' 갈무리 치안유지법 위반자들은 독방에 수감됩니다. 북 3사 108호, 누우면 발이 닿는 좁디좁은 독방은 포르말린과 오물냄새로 숨이 턱턱 막히지요. 마치 시인이 죽어 누울 관 같습니다. 그런 독방을 나올 기회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지경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해골 행진과 일주일에 한두 번 있는 운동시간과 주사를 맞는 시간이 전부이지요. 발가벗고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린 채 목욕을 하러 가는 것을 해골 행진이라고 부릅니다. 봄이 먼 겨울에도 해골 행진은 멈추지 않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좁쌀 같은 소름이 화르륵 일어나, 애꿎은 겨울바람에게 화풀이를 해봅니다. 독방은 한낮에도 십 촉짜리 알전구를 켜 놓지만 어둑어둑합니다. 시인은 독방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봉투에 풀을 붙이고, 목장갑 코를 꿰어야 하고, 명주실로 투망을 떠야 하지요.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녁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꽁보리밥에 단무지 몇 쪽, 묽은 된장국이 전부인 밥마저 주지 않으니까요. 깊고 깊은 밤, 시인은 시를 씁니다. 세상 모든 소리들이 또렷이 들려오는 밤은, 시를 읽고 시를 품는 시간이지요. 밀려오는 하카타만의 파도 소리,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소리, 꽃봉오리가 터지는 소리, 봄바람이 일렁이는 소리, 애벌레가 기어가는 소리, 꽃잎이 날리는 소리,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별이 뜨고 별이 반짝이고, 별이 지는 소리였을까요? 별들은 시인에게 속살속살 말을 걸어옵니다. 하늘, 바람, 별, 나무, 구름, 새, 햇살, 비, 천둥, 나뭇잎, 달빛, 노래, 꽃... 세상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로 와 시가 되지요.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마지막 행인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를 소리 내어 읽어보셔요. 자신도 모르게 눈이 확 커지면서 슬쩍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1941년 5월 31일에 썼다고 합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였지만, 사랑스러움과 따스함이 가득 담겨있지요. 시인의 따스한 손길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을 토닥토닥 위로해줍니다. 시인은 밤이 어두워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래도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는 건’ 어떻겠냐고 속삭입니다. 작고 작은 씨앗은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지요. 땅속은 어둡고 축축합니다. 그러나 씨앗은 알고 있죠. 하루, 이틀, 사흘... 밤의 시간이 지나면 성큼 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요. 봄이 되면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겁니다.윤동주 시인은 의사나 판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반대에도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시인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길이 시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중에서)’고 노래했지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준 윤동주 시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육체는 사라졌지만 정신은 오롯이 살아남아 우리의 영혼을 살찌워줍니다. 서시 원본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1941년 11월 20일, 윤동주) 오늘 밤은 윤동주 시인을 흉내 내어 별을 헤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