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모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2지구장 이번 달에는 제2장 ‘우리가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가?’를 다루려 한다. 머튼은 제1장에서 전쟁은 ‘불가피한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따른 결과임을 직시하라 하였다. 상대에 대한 혐오 못지않은, 수동적 체념의 위험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 있게 응답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성경에 들어 있는 두 개의 근본적 질문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 “친구야, 너는 무엇 하러 여기에 왔는가?”(마태 26,50) 특히 두 번째 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을 배반한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던진 운명을 가르는 질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핵무기로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라고 요청한다. (마태 26,50) 우리말 새 번역 『성경』에는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로 번역돼 있다. 머튼은 도어 랭스가 불가타 성경을 영어로 옮긴 번역본에서 이 질문을 가져왔다. 도덕적인 또는 부도덕한 세 가지 견해 머튼은 냉전과 핵무기 증강의 당대 미국 상황에서 “도덕적인(그리고 부도덕한) 함의를 지닌 세 가지 견해”가 공존한다고 하면서 각각의 견해에 담긴 논점들을 간략하게 서술한다. 첫째는, 한쪽의 극단에 자리한 ‘강성의 현실주의적 견해’이다. 이는 현실의 공산주의가 서구 사회에 큰 위협이 된다는 한 가지 사실에만 초점을 둔다. 그들과의 대화와 협상은 무의미하며,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핵전쟁도 얼마든지 불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견해를 지닌 강경파들은 공산주의 세력이 사회에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고 말하며, 자신들에게 반대하거나 군비 철폐·평화를 부르짖는 이들은 모두 ‘친공 세력’이라고 몰아붙인다. 강경론자들은 도덕적 문제들은 밀쳐둔 채 과학자처럼 현실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매달리는데 이는 두 가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우선 인도적이고 도덕적인 감성을 무디게 하고, 우리 마음속에서 핵무기를 의연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단순명료하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비타협적 강경론이 현실에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케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만족을 얻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식의 만족은 도덕적 맹목과 양심의 마비를 가져올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막대한 군사비 지출하고 거대한 군대 꾸려온 여러 나라들의 실상 © 한겨레21] 둘째는, ‘온건 중도적 견해’이다.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태도를 가진 신학자들, 정치가들과 여론 주도층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냉전의 위험을 엄존하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다만 그 대결이 핵전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기에 군사력을 증강시켜야 하지만 핵무기보다 재래식 무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이러한 입장의 신학자와 성직자는 자신들이 전통적 입장의 그리스도교 도덕성(정당한 전쟁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머튼은 “‘중도파’가 아무리 중용을 지키려 해도 호전적인 ‘강경파’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라 평가한다. 실제로 현실 상황이 악화되어 여론이 경화되고 강경파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때는 온건 중도파의 노선과 결의도 쉬이 힘을 잃게 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다른 한쪽의 극단으로서 ‘이상주의적 진보파의 견해’이다. 이들은 대개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지하는데, 여기에는 핵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핵무기 평화주의자’로부터 일체의 전쟁을 거부하는 ‘절대적 평화주의자’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들 평화주의자들은 ‘일방에서만이라도 군비 철폐를 단행하자’는 입장을 취하는데 현실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은 저항과 증거를 중시하는 ‘시민불복종’ 형태의 소수 운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저자는 이들 평화주의자들이 대다수 시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 말하는데, 강경파들이 이들을 공산주의자라 매도하고 매스컴이 고의적인 오도로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오해의 소지가 있고 감정적으로 민감한 구호를 되풀이 할 경우 핵 현실주의자의 호전적 입장을 강화시킴으로써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 이상으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세 가지 상이한 견해들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견해와 입장들이 얽히고설켜 문제를 풀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의 세계와 한국 상황과도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머튼은 무엇보다 먼저 ‘지나친 일반화의 유혹을 뿌리치라’고 말한다. 호전적인 외부의 세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폭력과 광기,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안팎의 싸움을 요구한 것이다. 이때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나쁘다’는 그릇된 확신도 옅어지리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폭력성을 자제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중심, 내적 동기를 회복하라 말한다. 온갖 아우성과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흔들리면서도 우뚝 설 수 있는 오뚝이가 되자는 초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