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찬 나보르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법원리성당 주임 여름이 끝나가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찬 공기가 성당을 감싸던 어느 날, 삼총사의 맏언니 말지나 할머니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떠나셨다. 늘 성당 앞줄 앞뒤로 앉으시던 삼총사의 한자리가 비었고, 그 공허함이 남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레네, 엘리사벳 할머니의 모습에서 는 한동안 깊은 상실감이 느껴졌다. 말지나 할머니는 연세만큼이나 허리가 많이 굽으셔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무릎을 굽히거나, 지팡이를 짚고선 할머니께서 고개를 한참 위로 올리셔야 했다. 이레네 할머니는 보청기를 끼셨는데 가끔은 윙윙거리는 소리가 마이크 소리와 겹쳐서 옆 사람에게 볼륨을 줄이라고 전달하는데, 그 통역 역할을 하는 것이 엘리사벳 할머니다. 할머니들은 늘 일찍 성당에 나오신다. 추운 겨울에도 미사 한 시간 전에는 오셔서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를 바치신다. 본당에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몰랐던 본당 신부가 봉사자들에게 왜 그렇게 난방을 미리 켜냐고 난방비 아끼라고 말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가는 귀가 어두운 할머니들은 기도 소리도 크다. 혼잣말로 하시는 기도이지만 주위에 다 들린다. 그래서 때론 미사 중에 분심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6.25 참전 용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94세 레지오 단장 에우제비오 형제님이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셨다. 독일의 작가이며 철학자인 괴테는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라며 노년의 삶이 점차 가진 것을 잃어가는 과정임을 강조하였다. 괴테의 말은 인간의 신체적 쇠퇴, 주변인과의 이별, 사회적 역할의 감소 등을 시사하며,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노년이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성숙과 영적 완성의 시간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65세 이상의 노인이 대부분인 초노령화 본당에서, 이제는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기에 생기와 활력을 잃고 황량해진 분위기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가톨릭 신앙에서 인간의 삶은 단순히 이 세상 물질적 가치를 좇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노년은 이러한 과정의 중요한 단계로서, 세속적 가치에서 벗어나 영적 성숙을 이루는 시기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06-1014항에서는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그 끝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노년은 단순한 쇠퇴와 상실이 아니라,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삶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06-1014항) 그럼에도 노인의 역할과 가치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노인들도 여전히 사회와 교회 공동체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욱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신앙과 삶의 교훈을 전수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성인 품에 오르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노인은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지혜를 전하고 사회를 위한 소명을 수행하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노년이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봉사와 기여의 기회임을 분명히 한다. 가톨릭 신앙은 인간의 고통과 상실을 단순한 부정적 경험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하느님과 더욱 깊이 결합할 기회로 해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노인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도 신앙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노년의 고통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더욱 깊이 하느님과 결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년은 하느님의 은총을 깊이 경험하고, 우리 삶을 더욱 거룩하게 만드는 시기"라고 강조하시며, 나이 든 사람의 책임이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방주를 만든 의로운 인간 노아의 모범을 따라 젊은이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이렇듯 노년의 삶은 단순히 육체적 쇠퇴와 사회적 역할의 축소로 정의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하고 젊은 세대에 신앙과 지혜를 전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노년을 상실의 과정이 아닌 신앙 안에서 완성과 희망의 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