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베드로)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겸 민족화해센터장 우리는 지금 통회와 보속의 시기인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이 회심의 순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과제는 용서와 화해입니다. 평화는 바로 이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용서와 화해는 일방적이거나 일회적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용서가 하느님의 자비로 인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올해 새해 첫날,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의 주제가 바로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였습니다. 이 주제의 구절은 우리가 잘 아는 ‘주님의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 청하기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구절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글자적인 의미로 본다면 우리가 다른 이에게 빚진 것을 갚고자 하오니 주님께서 우리의 빚진 것을 대신 갚아 주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께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분께 빚진 것을 되갚을 때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옵니다. 평화는 희년이 지닌 의미처럼 우리의 빚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갖게 되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희년의 순례자인 우리에게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권하십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우리는 바로 그 희망으로, 곧 하느님 자비에 대한 경험의 결실로 우리 삶을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은 관대함 안에서 넘쳐흐릅니다. 희망은 계산하지 않고, 은연중에 요구하지 않으며, 잇속을 챙기지 않습니다”(제58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0항). 또한 죄의 용서는 ‘무장 해제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강조하십니다. 무장 해제된 마음만이 참 평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남을 공격하고 파괴하고 무시하는 ‘무장된 마음’으로는 결국 갈등과 분쟁, 그리고 전쟁과 그 파멸의 결과만이 남을 뿐입니다. 무기와 공권력의 힘으로는 평화의 세상을 꿈꿀 수 없습니다. DMZ(비무장 지대)라는 그 말의 원래 의미처럼 우리의 삶도 ‘무장 해제’된 ‘평화의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용서의 이러한 순환 안에서 저희에게 주님의 평화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