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모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2지구장 이번 달에는 ‘3장 죽음의 무도’와 ‘4장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가꾸는 사람들’을 살피려 한다. 2장에서 머튼은 당대 핵전쟁 위기로 치닫던 미국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세 가지 견해 곧 ’현실주의 강경파 – 온건 중도 – 이상적 평화주의‘를 소묘한 후 무엇보다 먼저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나쁘다’는 지나친 일반화의 유혹을 경계하자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내부의 폭력성을 자제하면서도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영성적이고 내적인 중심 잡기의 필요성도 역설하였다. 광적인 핵 억지 게임 그 죽음의 무도 3장에서 머튼은 냉전과 핵무기 증강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요약한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인류와 그 세계가 완전히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데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편을 더 큰 핵무기와 더 철저한 파멸로 위협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려는 편집광적인 핵 억지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안전핀이었던 9.19 군사합의마저 파기된 오늘날 남북한의 상황과 유사하다. 정치적 강박에 사로잡힌 이런 죽음의 게임에서는 양쪽 진영의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무고한 민간인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걸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유엔도 그 역부족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교 도덕 이론가들은 뒷전에 물러나 토론에 열중해 있었고, 대다수 종교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미온적이었다는 것이 머튼의 지적이다. 호전론자들의 광기와 종교인들의 이러한 미온성과 침묵, 나약한 순응주의를 향해 그는 다시금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증오와 맹목적 권력욕에 사로잡혀 우리 세계를 심연에 빠뜨릴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야수성을 절제하고 국가와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어 참을성 있고 인간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다.” 아직 우리에게 시간과 기회가 있음을 보라는 초대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4장에서 저자는 우리를 도와줄 영성적 중심에로 이끈다. 평화에 대한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큰 틀에서 살피고 있다. (5장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정당한 전쟁론’을 살피고 있는데, 이는 다음 달에 다루겠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평화의 군왕”(이사 9,5)으로 오시리라는 것과 그분의 왕국은 ‘평화의 왕국’이 되리라 확신하였다. 하느님의 자비 안에 온 세상이 화해하고, 그분 자비를 받아 누리는 이들 가운데 평화가 넘쳐날 것이라 본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라는 고백처럼 평화의 왕국이 이미 교회 안에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성령께서 초자연적 사랑 안에서 평화의 끈으로 그들을 일치시켜 주셨음을 체험하였고 확신하였다(에페 4,3 참조).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은 도덕적 이상인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선사된 완전히 새로운 삶에 대한 증거였다. 때문에 불목과 갈등과 전쟁은 죄 많은 ‘옛 삶’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머튼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종말론적인 것”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메시아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미 선사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기에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투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묵시록이다. 임박한 메시아의 재림에 대한 기대 속에서 그들은 목숨을 다해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갔다. 예외적으로 로마군 내에도 더러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병사의 신분은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투르의 마르티누스는 병역을 수행하였지만 전투에서의 살인 명령에는 이렇게 불복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병사이므로 타인을 죽일 수 없다.” 요컨대 전쟁에서 싸우기보다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한 최초의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은 군 복무를 비난하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세 가지만을 살펴보겠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그리스도인 병사를 ‘평화의 병사’라 부르며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덕성만이 유일한 무기라고 설파했다고 한다. 호교론자인 유스티누스는 “우리는 이전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던 사람이었으나 이제 우리는 적과 전쟁을 벌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판관 앞에서 거짓말도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기꺼이 죽겠노라.” 하였고, 더 나아가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라 명하셨을 때 이는 “예수께서는 모든 병사의 무장해제를 명하신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가르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