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모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2지구장 4장에서 머튼은 평화에 대한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큰 틀에서 살핀 다음, 5장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오랫동안 가르쳐온 ‘정당한 전쟁론’을 다루는데, 이를 오리게네스의 가르침과 연계하고 대조시켜 전개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두 거장의 논지를 요약해 보기로 한다. 이교도 전통주의자를 향한 오리게네스의 호교론 [오리게네스] [켈수스 논박] 오리게네스(185년경~253년경)는 자신의 저서 『켈수스 논박』(Contra Celsum)에서 로마제국 쇠퇴의 원인을 그리스도교에 돌렸던 켈수스의 비판을 소개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호교론을 펼친다. 켈수스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만을 숭배하면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다신교적 규범과 전통을 등진 반사회적 집단이다. 그들은 공적 삶에 참여하지 않으며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았는데, 특히 제국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인간 사회는 전통과 관습으로 이루어진 복합물인 것만이 아니다. 로고스의 강생 그리고 부활한 구세주가 교회 안에 현존함으로써 완전히 달라진 세상인 것이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한 종말론적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법률’이라는 진리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 ‘평화의 자식’으로 새롭게 태어나 병역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공동체에 필요한 자신들의 몫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인이 기도로써 황제를 더욱 잘 섬긴다고 하였다. 기도는 전쟁의 상대자가 아니라, 인간들을 서로 가르고 싸우게 만드는 악의 세력 그 자체를 겨누며, 전쟁 그 자체와 싸우는 영적 무기라 하였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인을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내세웠다. 이는 앞서 살폈던 성경과 초기 교부들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약 200년 뒤의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이와는 달랐다. 그는 오리게네스의 모든 인류를 위한 선익의 추구라는 ‘사랑의 원칙’을 새롭게 받아들여 자신의 ‘정당한 전쟁’ 옹호론을 펼친다. 전쟁의 시작과 수행 과정 모두가 정당해야 [ 성 아우구스티누스 ]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도원에 입회하려는 군인 보니파시오에게 이교도들의 공격에 맞서 북아프리카의 도시들을 방어하는 데 힘을 다하라고 권면하였다고 한다.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게 된다. 무슨 까닭에서일까? 먼저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사이에는 중대한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313년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5세기 초 고트족의 로마 침공이다. 그리고 ‘정당한 전쟁’ 이론은 바로 이러한 이민족의 침략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교구였던 히포 가까이 들이닥친 실제적 위협 가운데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눈앞의 전쟁을 회피하기 어려웠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히포의 주교는, 인간에게는 지상의 이기적 사랑과 천상의 영적이고 초연한 사랑이라는 두 개의 사랑이 있는 것처럼, 지상 도시와 천상 도시라는 두 개의 다른 도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묵시록이나 오리게네스와 마찬가지로 평화의 천상 도시가 궁극적 승리를 거두리라는 희망을 간직하였다. 하지만 그 희망의 강도는 달랐다. 전자들이 임박한 종말을 염두에 두고 희망했다면 후자에게서 그 희망은 많이 후퇴하였을 터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파생되는 문제는, 천상의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의 시민과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의 이 세상에서는 그들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성직자나 수도자로서 영적인 삶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지 않는 이상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세상이 주는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세상이 요구하는 책임도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를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반사회적 집단이라는 볼루시아누스의 비판을 거슬러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도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도 참여한다고 반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때 전쟁 개시의 동기도,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도 정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정당방위론’을 크게 원용하여 전쟁과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원칙을 하나로 합치시킨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전쟁에 참여할 수도 또 이를 기피할 수도 있다고 하였는데, 그 동기는 이방인 병사들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지상 도시의 방어만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고, 평화가 바로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은 선익을 위해 행하는 자비의 전쟁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표현해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외적 행동과 내적 동기를 구분하면서 ‘자비의 전쟁’을 옹호하였다. 머튼은 이에 대해 정당한 전쟁 이론이 완전히 부조리한 것은 아니지만,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여 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맹신한 것이 그의 과오였다고 지적한다. 정당한 전쟁론은 역사 안에서 십자군과 이단 심문 그리고 수없이 되풀이된 ‘현실주의’ 전쟁론자들에 의해 더럽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