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석 시메온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주엽동성당 협력 지난 부활 대축일 다음 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된 3박 4일 일정의 <안중근 의사 평화 순례> 일원으로 동행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엠마오를 대신한 셈이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평화를 선물해 주신 그 순간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이 땅에, 기묘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 말씀의 씨앗을 뿌리신 우리 민족의 땅에 참된 평화가 가득하기를 출발 전부터 기도했습니다. 무도한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와 중국의 항일 투쟁 흔적들을 두루 돌아보는 계기였습니다. 고문을 당하며 지내야 했던 감옥, 비밀리에 행해졌던 반인륜적인 생체실험 현장 그리고 이번 순례의 정점이었던 하얼빈역 모두가 아직도 생생히 가슴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사와 바로 옆에 마련된 안중근 기념관은 저뿐만 아니라 동행했던 순례단 모두에게 적잖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 안중근 의사가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다룬 민족기록화 (박영선作) ] 저격 순간의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의 위치를 바닥에 표시해 놓았는데, 실제 그 거리는 대여섯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사실이 놀라웠고, 또 (물론 성공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렇게 바짝 다가가기까지 안 의사가 억눌러야 했을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재판과 사형 집행의 순간까지 흔들림 없는 당당함으로 일관했던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 전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새사제 학교> 프로그램으로 북경과 연길, 백두산 등을 다녀온 게 첫 중국 여행이었습니다. 코로나 직전에 성 김대건 신부님 흉상 기증을 위해 교구청 신부들이 당시 교구장님과 함께 북경 교구를 방문했을 때까지, 저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중국 방문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로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연길과 백두산 등지로 한정되긴 했지만, 이번에 체험한 중국의 모습은 저의 선입견을 많이 깨뜨리게 한 게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나라 KTX에 버금가는 고속철도가 운행 중이었고, 얼마 전에 개최했던 동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질서 있는 모습으로 변한 도시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정도를 넘어서 이렇게 눈에 띄게 발전한 중국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놀라움뿐만 아니라 고맙고 부끄러운 생각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장소와 수감 및 처형 현장까지 너무 잘 보존하고 있는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낙관이 제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게 사실이건만, 그 숭고한 발자취를 기억하고 기념할 만한 박물관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우리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박물관은커녕 식민사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일본 국적이었다느니, 암살가였다느니 하는 역사 인식에 대한 무지와 왜곡을 반복하고 있는 친일 기회주의자들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이 단체로 견학하면서,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부끄럽지만 동시에 당당했던 역사를 확인하게 하는 중국 교육 당국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미완성본이긴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했던 <동북아 평화론>부터 시작해서 그의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게 해 준 워크북부터 순례 일정까지, 이번 순례를 위해 특별한 준비와 배려를 아끼지 않아 주신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관계자분들에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교구 관계자분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다름이 아니라, 이번 순례 일정 중에 ‘북한 식당’을 가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수차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심지어는 동남아를 다녀오는 경우에도 북한 식당 방문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구 모 지구 사제단의 백두산 순례 때도 방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식당 측에서 남쪽 사람들은 받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아무래도 남북 간의 정세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겠지요. 압록강이나 두만강, 그것도 중국 쪽에서 바라보는 북쪽 산하의 모습만 봐도 가슴이 뛰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북쪽의 음식을 먹으며 그곳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접할 때면 가슴뿐 아니라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끼곤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듯, 직접 보고 직접 만나 서로 말을 건네다 보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민족 동질감’을 분명 확인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날이 앞당겨지기를, 그 현장에서 참된 평화를 함께 노래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