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모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2지구장 지난달에는 제6장 마키아벨리의 유산을 다루었다. ‘정당한 전쟁론’이 도덕적 기준을 외면하는 현실 정치권력자들의 논리와 사고가 만나면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굴절되어 나타날 것인지 예감케 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달에는 제7장 현대전의 정의, 제8장 냉전의 종교적 문제를 요약하려고 한다. 신냉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과거와는 다른 오늘날의 전쟁 과거의 전쟁과 현대전이 크게 구별되는 점은 무엇보다 현대화된 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이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등 핵무기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현대전은 더욱 광범위하고 호전적이며 잔인한 성격을 갖는다. 군사력 사이의 충돌만이 아니라 적국의 도시와 민간인들에게까지 엄청난 공습이 이루어진다. 현대전은 방어 전쟁이라고 해도 ‘정당한 전쟁’ 이론의 틀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머튼은 현대전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의 유형을 발견한다. 1) 한 나라가 방어 목적의 ‘정당한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2) 윤리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겠노라고 선언한다. 3) 한동안 적으로부터의 불의한 고통을 영웅적으로 감내한다. 하지만 4) 그러한 대응 방식이 효과적이지 않다며 군부가 전쟁 수행 정책을 바꾸어 새롭고 잔인한 방식을 도입한다. 그리고 5) 사람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일련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만다. “이렇게 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되도록 빨리 전쟁을 종결해야 하고 불의의 침략자를 물리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6) 자기 합리화와 대중적 격분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 종결을 위해 내달린다. 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해 적국의 도시와 민간인들에까지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한다. 이렇듯 방어 전쟁이 침략 전쟁이자 정복 전쟁으로 완전히 변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지경에서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 원칙이 준수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단언한다. “이렇게 되면 그 전쟁은 순수한 테러리즘이 되며 이런 부도덕한 방식은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 이론으로부터 제외된다.” “재래식 무기는 정당하고 핵무기만이 불의하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무기를 사용하건 테러리즘이나 섬멸전과 같은 방식을 쓰면 그것은 무조건 불의의 전쟁이 된다.” 그러면서 아울러 이렇게 개탄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우리가 조국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분노도, 어떠한 과도함도, 어떠한 공포도, 그것이 ‘더 작은 악’(次惡)이고 ‘필요악’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허용하게끔 되어 버렸나?” 그리스도교 정신의 미래는? 머튼은 전쟁 상황에서의 이러한 판단이 도덕적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편의적 도덕관념 곧 결과에 대한 단기적 추측에 근거한 기회주의적 선택으로 기울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통한 위협만으로 전쟁을 결코 예방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적의 핵 공격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조차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든다. 나아가 핵무기는 국제 문제 해결을 위한 윤리적인 수단도 현실적인 수단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핵 전면전은 절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나 오판, 오해나 혼란으로 인해 선제공격이 일어날 수 있음을 염려한다. 저자는 현재라는 시간이 인류가 광범위한 핵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절망적 상황이기도 하지만 결의와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직 핵전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선택과 결정의 도덕적 수준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교적 이상과 태도가 쇠퇴하고 있는 ‘포스트 그리스도교적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튼은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그리스도교적 외양은 거의 속 빈 강정과 같은 것이며, 과거에 ‘그리스도교 사회’라고 불리던 사회조차 오늘날에는 무늬만 그리스도교이고 사실은 완전히 유물론적 이교도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냉전 현상의 밑바탕에 종교적 문제가 분명히 깔려있다는 것, 냉전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조직적으로 왜곡하고 잠식하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정신이 적나라한 권력의 패권에 힘을 잃고 속속 굴복하고 있다는 것, 나아가 냉전 시대의 종교가 사람들의 차별적 성향에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합리화의 외양을 덧칠해준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모름지기 시종일관 깨어 있어야 한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런던 타임스」에 기고된 시그프리드 서순(Siegfried Sassoon)의 독자 편지는 우리에게 진한 경종을 울린다. “내가 방어 전쟁이라 생각하고 참전했던 이 전쟁은 이제 침략 전쟁이자 정복 전쟁으로 변질했습니다. 나는 나와 내 동료 병사들이 원래 품었던 참전 목적을 처음부터 분명히 밝혀서 나중에 그것이 변질되지 않도록 했어야만 했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우리가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를 지금쯤 협상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