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먼저 시작하는 것

김지수 아우구스티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주엽동성당 부주임 얼마 전 "성인, 지옥에 가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 교구 성사 전담 사제이신 서춘배 신부님의 추천사를 읽어보니 한때 신학생들의 필독서처럼 여겨졌다는데, 저는 사제가 되어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노동사제로 살아가기를 소망했던 신학생들에게 이 책은 쓰디쓴 현실과 사제로서의 이상을 동시에 보여주었겠지요. 작품 속 주인공인 피에르 신부의 삶은 노동자와 공산주의자, 빈민들 사이에서 고되고, 보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비추어 주시는 빛을 따라가지요. 저는 그 가운데에서도 피에르 신부가 마지못해 끌려가 참여한 평화 투사 (실상은 공산주의를 설파하기 위한) 모임에서 한 연설이 마음속 깊이 남았습니다. 피에르 신부는 회중들에게 '평화'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그 평화입니다.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만 나누는 평화가 아니라 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만들어 가는 평화 말이지요. “전쟁과 악은 같은 것입니다. 전쟁은 악입니다. 그것도 가장 나쁜 악입니다. 그런데 늘 어느 곳에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이렇게 소리칠 순 없습니다. '저 사람이 먼저 시작했어. 내가 시작한 게 아니야!' 그러나 악은 어디선가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善)인 평화도 어디서든 먼저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저녁, 바로 이 자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평화는 우리 모두가 화합해서 친구가 되고 서로 이해타산을 하지 않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지내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질베르 세스브롱, 남궁 연 옮김, 『성인, 지옥에 가다』, 바오로딸, 114-115쪽) 이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뉴스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는 분쟁을 비롯한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이웃들과도 벌어지고 있는 작은 전쟁들까지도 말입니다. 저는 이제 세 번째 본당에서 부주임 신부로 지내고 있는데, 거쳐온 본당뿐만 아니라 사석에서 신자분들께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하지만, 누군가 때문에 힘들다’는 말씀을 듣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단체활동을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의견 대립이나 감정적인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개인 사이의 감정 다툼이 단체와 단체 사이의 갈등으로 확대되어 마음의 상처를 받으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피에르 신부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평화는 어디서든 먼저 시작해야 한다”라는 그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 "저 사람이 먼저 다가와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상처는 더 깊어집니다. 분단된 우리 민족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누가 먼저 양보해야 하는지를 따지는 동안 세월은 흘러가고 분단의 벽은 더 높아져만 갑니다. 결국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로가 상대방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쥐고 있던 비수로 상대방을 찌르고야 맙니다. 이처럼 대화와 소통의 단절은 이 관계를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몰고 갑니다. 대화로서 오해를 풀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맙니다. 민족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북한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일방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평화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평화는 "서로 이해타산을 하지 않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지낼 때 이루어집니다. 분단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먼저 북한 주민들을 우리와 같은 민족, 같은 형제자매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질 때, 진정한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작은 곳에서부터 평화를 먼저 시작해보려 합니다. 본당에서 만나는 신자분들과의 관계에서, 동료 신부들과의 만남에서, 그리고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말입니다. 그 작은 평화의 실천이 모여서 언젠가는 우리 민족의 큰 화해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기도드립니다.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logo
LOG IN 로그인
  • 민화위 소개
    • 설립취지 및 사업소개
    • ABOUT US
  • 피스굿뉴스
    • 평화의 길
      • 하늘지기
        • Newsletter
          • 도움주시는 분들
            • 게시판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logo
              • 민화위 소개
                • 설립취지 및 사업소개
                • ABOUT US
              • 피스굿뉴스
                • 평화의 길
                  • 하늘지기
                    • Newsletter
                      • 도움주시는 분들
                        • 게시판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logo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logo
                          • 민화위 소개
                            • 설립취지 및 사업소개
                            • ABOUT US
                          • 피스굿뉴스
                            • 평화의 길
                              • 하늘지기
                                • Newsletter
                                  • 도움주시는 분들
                                    • 게시판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logo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사업자정보확인

                                      호스팅제공자: (주)식스샵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