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행동 (1)

김동희(모세)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2지구장 오랫동안 ‘정당한 전쟁’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또는 이를 둘러싼 여러 입장들을 이성적으로 하나씩 검토해 왔다. 제10장에서부터 머튼은 그러면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참으로 끈기 있게 이 주제를 다루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장의 제목은 ‘평화를 위한 행동’이다. 남은 8개의 장을 이것과 같은 제목으로 묶어 살펴보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세 번에 걸쳐 요약하겠다. 1. 도덕적 수동성과 악마적 능동성을 넘어서 제12장에서 머튼은 ‘도덕적 수동성과 악마적 능동성’을 이야기한다. 먼저 도덕적 수동성이란, 미국주교단이 1960년, 1961년에 발표한 서한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끔찍한 위험 요소라고 지적한 사항이다. 한나 아렌트가 1963년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나치 독일의 역사에서 보듯 공중의 이익을 위해 합법적 권위에 복종한다는 미명하에 극악한 범죄조차 무책임하게 따랐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 파괴적 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도덕적 수동성’과 ‘악의 평범성’은 악행이 반드시 내면의 사악함이나 광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무비판적 복종과 도덕적 무감각에서 나올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001년 로마에서 유학 중이던 나는 각종 매체에서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전쟁인 이라크전쟁 개시를 눈앞에 두고 유럽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미국인들을 인터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놀랍기 그지없는 내용이었다. 그 많고 다양한 이들이 모두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정부를 믿는다. 그들은 나/우리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선이고 신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머튼이 말하는 ‘도덕적 수동성’이 얼마나 엄청난 악인가를 깊이 공감할 수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도 어찌 보면 이와 연관된다. “가만히 있으라”는 거듭되는 방송에 그대로 따른 것이 터무니없는 희생을 낳았다. [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공격을 받아 무너진 아프간기술자문단 사무실 AFP=뉴스] 저자가 ‘정당한 전쟁’ 이론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오래도록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하게 알아야 ‘모호하고 무책임한 도덕적 수동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전쟁’은 이성적으로 볼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가능한 방어 전쟁 개념이다. 하지만 그것은 탁상 머리 위에서만 가능한 이론이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전쟁의 광기와 두려움, 서둘러 성과를 거두려는 조급함으로 인해 전쟁은 어떤 한계 안에 묶어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 된다. 핵무기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의 대량 살상 무기가 동원되는 전쟁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인류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중단 없이 도모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다음으로 머튼은 정치·경제·군사 영역에서의 ‘악마적 능동성’에 대해 말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전쟁과 연관하여 기술 진보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은 엄청난 선익이 될 수도 있고, 또 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술력의 발전에 맞갖은 적절한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둘째로, 우리 시대의 비극은 사악한 자의 악의가 아니라 착한 사람의 좋은 의도가 부지불식간에 허망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예로 든다. 전승국의 좋은 의도를 가진 과학자·군인·정치인들이 핵폭탄이야말로 당시의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인도적인 방식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머튼은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역시 부지불식간에 이와 같은 전쟁범죄에 말려들어 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가 다른 무엇에 앞서 기술적 영역에서 어떻게든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량 살상 무기들이 도처에서 늘어나고 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도덕성에 충실하다면 무기를 팔아 남긴 이득으로 얻은 풍요에 어찌 탄복만 하고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머튼은 우리가 파괴를 부추기는 미치광이 짓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러한 행위에 항의하고, 그러한 기술력을 통제할 수 있는 국제기구에 권한과 수단을 마련하여 줄 때에 인류 파멸이 아닌 인류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에 주목한다. 머튼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정신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된 군비 철폐안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잘 연구하여 희망의 분위기와 협상의 자신감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결적인 과제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군축 협상을 위해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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