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빈 안드레아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정발산성당 부주임 백두산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하지만 마음대로 가서 볼 수 없는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 그리고 그 산이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 그리고 중국 사이에 자리 잡은 특수성 때문이다. 2024년 6지구 사제연수로 처음 그 백두산에 가볼 기회가 생겼다. 연길 공항에 도착하여 처음 마주한 중국은 사회주의 풍의 간판들과 그 안에 보이는 익숙한 한글들이었다. 중국이지만 한국 같기도 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묘함이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왠지 정감이 들었다. 현지에 도착해서 가이드분께서는 백두산의 높은 해발고도 때문에 수시로 기상 변화가 심하고 어떤 변수가 있을지 당일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백두산에 도착하더라도 일부 사람들은 안개가 걷히면서 천지를 보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그 이후에 온 사람은 못 보고 하산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정보를 들은 뒤에는, 천지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내심 못 볼 수도 있겠구나 마음먹었다.차라리 그러는 게 올라가서 보지 못하더라도 덜 실망할까 싶기도 했다. 전날 북·중 국경선도 다녀오기도 했던 터라 백두산 땅을 밟아 보는 것에 의의를 두어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단순히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같이 당일 열심히 올라가면 오를 수 있겠지 하며 생각 했던게 큰 착각이었다. 우선 중간중간 50인승 관광버스를 3~4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정상쯤에 이르러선 작은 봉고차로 갈아타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가야 했다. 부제반 이스라엘 성지 순례 때 타볼산 정상에 올랐던 작은 밴이 떠올랐다. 백두산, 타볼산 모두 정상 직전엔 좁은 길과 가파른 고도로 큰 버스는 올라갈 수 없고 또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나 한참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작은 봉고차로 옮겨타 마치 미시령 꼬부랑 고개를 넘듯이 올라가야만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백두산 천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 여정이 6지구 신부님들과 함께한 여정이어서 그런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천지에 도착하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천지의 물이 영롱하게 펼쳐져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TV에서 보던 백두산 천지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경관이었다. 웅장한 자연 앞에서 작아진 나의 모습이 오히려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가만히 말없이 그 경관을 오래 보고 싶었지만, 밀려오는 중국 관광객과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로 인해 그 침묵은 오래갈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 백두산 천지 ] 백두산 여정에서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어디서든 다 같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등의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백두산을 가는 중간에 있던 어느 시골 작은 성당에서도 자유롭게 성당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언젠간 중국 교회도 보편 교회와 일치의 길을 갈 수 있게 되기를 또 나아가 북한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또한 이 여정에서 느낀 것은 여행은 ‘어디’를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어떤 마음’으로 가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백두산 순례였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며 함께 한 6지구 사제연수는 참 뜻깊게 다가왔다. 그곳에서 마음을 모아 주님께 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친 기도를 이제 우리 모두 다 함께 바치고 싶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