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베드로)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겸 민족화해센터장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며, 겨울 철새들이 날아오는 시절인 지난달 중순에 도보 순례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접경 지역에 조성된 평화 누리길을 걸었습니다. 임진각에서 철원 승일교까지 124km의 짧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침묵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걷는 이 길에서 수없이 많은 평화의 숨결과 평화의 소리를 느끼고, 들었습니다. 이 평화의 소리는 작은 소리부터 요란한 소리까지 다양했습니다. 순례자의 발걸음 소리, 동네의 개 짖는 소리, 흐르는 시냇물 소리, 하늘을 날며 울부짖는 두루미와 기러기 떼 소리, 이러한 모든 소리가 평화의 부르짖음으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에 크게 요동쳤던 평화의 소리는 낙엽 밟는 소리였습니다. 철원 소이산 둘레길을 걸어갈 때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우리가 지나칠 때마다 ‘바스락, 바스락’하고 소리를 냅니다. 다른 어떤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낙엽만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그때 제 머리에 들었던 생각이 ‘아, 평화가 바스락거리는구나!’ 였습니다. 잠시 휴식 중에 ‘평화가 바스락거린다’라고 말했더니 어떤 신부님이 다음과 같이 긴 문장으로 완성해 주셨습니다. “평화의 발걸음을 따라 평화가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평화의 몸짓과 움직임이 소리를 냅니다. 평화를 위해 걷는 걸음걸음이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 시켜줍니다. 도보순례를 통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과 자연이 우리에게 평화의 소리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이곳 접경 지역에서는 대북, 대남 방송으로 밤마다 갈등과 적대의 소음이 매일 울려 퍼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 악몽의 소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평화의 소리에 더하여 우리도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로써 평화의 하모니를 이루었으면 합니다.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도 평화가 바스락거리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