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경 알베르토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중산 주임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유물은 단연 신라 금관입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지난 10월 29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덕분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 모형을 선물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 전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됐으니까요. 덕분에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라 금관 : 권력과 위신’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신라 금관 6점이 한자리에 몰린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경주박물관 앞에 줄을 서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이런 금관은 왜 만든 걸까? 전 세계 금관 절반 이상이 신라 것이라는데, 왜 신라에서만? 왜 이런 모양일까? 신라 왕들은 평소에 이런 관을 쓰고 다녔던 걸까? 이런 말들도 돌아다닙니다. “신라 금관은 원래 쓰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 얼굴에 씌우는 데스마스크(Death Mask)다. 트럼프에 대한 모욕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금관이 만들어진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1500~1600년 전인 만큼 100% 확실한 정답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라 역사와 유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때까지 쌓아온, 어느 정도 합의된 연구 성과들이 있습니다. 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이를 종합한 결과입니다. 경주박물관 전시와 도록,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부터 금관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사람들은 명품을 좋아합니다. 명품은 일반적인 공산품보다 품질이 좋은 데다 디자인도 대체로 멋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수십~수백 배의 값을 치를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명품을 사서 차고 다니면 그만한 재력이 있는 사람, 품격이 높은 사람으로 보일 거라는 기대가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신라 왕족들이 금관을 비롯한 황금 장신구들을 만든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쓰는 사람의 권력과 권위, 높은 신분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서 금관을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신라 왕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고 싶었을까요. 금관을 만들기 시작할 당시 신라는 ‘왕다운 왕’이 처음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4세기 이전 신라는 여러 부족이 힘을 합친 동맹에 가까웠지만, 이 시기(내물왕=내물 마립간) 중앙집권을 강화해 우리가 아는 ‘왕정 국가’로 막 변신한 참이었지요. 하지만 왕의 권위는 아직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왕이랑 내가 다를 게 뭔데?’라고 생각하는 힘센 족장들이 여전히 곳곳에 버티고 있었거든요. “우리 왕족은 선택받은 고귀한 핏줄이니 대대로 왕위를 물려받는다”라는 이유를 댈 수도 없었습니다. 직전까지만 해도 박·석·김 세 성씨가 돌아가며 왕을 지냈거든요. 왕이 “내가 왕이니 내 말을 들어라.”라고 말할 때, 지방 족장이 “너나 나나 원래 비슷비슷한 급이었잖아. 네가 뭔데?”라고 받아치면 대답이 마땅치 않았던 상황. 그래서 신라는 세련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황금의 정치학’입니다. 왕은 지방의 지배층에 금관이나 금동(금으로 도금하거나 금박을 입힌 구리)으로 만든 관 등을 줬습니다. 세력이 더 큰 족장에게는 더욱 멋진 물건을 줬지요. 왕에게 이런 물건을 받은 지방 족장들은 부하들에게, 인근 세력들에게 ‘면’이 섰습니다. “신라의 왕이 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라는 강력한 증거물이 생겼으니까요. 자신보다 ‘격’이 낮은 족장이 까불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네 관보다 내 관이 더 좋은 것이니 내가 더 높다. 내 말을 들어라.” 실제로 경주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들이 대구, 경산 등 영남 각지에서 발견됩니다. 중앙에서 제작해 족장들에게 관을 나눠줬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금관은 서로 다른 ‘격’을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의 금관은 ‘승리의 월계관’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표현입니다. 주님께서 현재 내가 신앙으로 살아가고, 증거하는 ‘순교의 월계관’을 주십니다. 조건 없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서로 각자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는 있으나, 신앙 안에서 만나는 금관은 신앙 그 자체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