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수료) 나는 나는 될 터이다 과학자가 될 터이다옳다 옳다 네가 네가 과학자가 될 터이다 북한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가사입니다. ‘과학자’ 자리에 예술가, 인민군대, 체육인 등 다양한 장래 희망으로 바꿔 넣어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과 달리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아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죠. 아이들은 우리 말을 익히거나, 외국어 알파벳을 처음 접하기 전 먼저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원수님 고맙습니다.” 와 같은 인사말을 먼저 배웁니다. 동시에 원수에 대한 적개심도 같이 배우죠. 평양 대성산유원지에서 열린 국제아동절 기념행사에서 군사놀이를 하고 있는 북한 어린이의 모습 Ⓒ연합뉴스 꼬마땅크(탱크) 나간다 우리 땅크 나간다산을 넘고 강을 건너 달려나간다.미국놈을 쳐부수며 만세 만세… 위의 가사는 학년 전 어린이(미취학 아동)들이 유치원에서 배우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도 주로 기관총, 탱크, 군함 등입니다. 여자아이들은 간호 가방을 메고 쓰러진 전사들을 치료하는 흉내를 내면서 놉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늘 전쟁터를 가상합니다. 적의 역할을 맡은 아이가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 ‘우리 편(북한 아이들은 우리 편, 즉 북한은 무조건 좋은 편이라고 여긴다)’인 아이는 어김없이 가슴을 부여잡고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치며 죽는 시늉을 합니다. 이는 ‘장군님의 전사’가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종의 죽는 ‘의례’ 같은 것입니다. 북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아동영화입니다. 일종의 북한 애니메이션이죠.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캐릭터들을 접하는데,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생산되는 의인화된 동물들이나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이나 ‘적’에 대한 적개심을 연상케 합니다. 알록달록 예쁜 장난감들을 볼 때마다 북한의 아이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다람이, 고슴도치, 물오리가 그들이 살고 있는 꽃동산을 족제비, 생쥐, 승냥이들의 침입으로부터 막아내는 내용의 전쟁 만화영화 Ⓒ북한 애니메이션 < 다람쥐와 고슴도치 > 갈무리, SICAF2018 제공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문화의 한 요소로서 ‘놀이’가 아닌 문화 그 자체를 놀이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놀이가 인간의 뇌를 자유롭게 할 터인데, 그 놀이마저도 특정 사상과 제도에 속박된다면 뇌는 서서히 경직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반도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진 정답과 교육된 옳음만을 추구합니다. 더 정확히는 추구하도록 만드는 환경에서 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어린 시절 색종이가 부족해 동네 언니가 빨갛고 파란 물감을 풀어 하얀 종이에 물들여주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납니다. 자신의 손가락이 물감으로 얼룩질 것은 전혀 염려도 않은 채 동네의 그 언니는 그렇게 만든 색종이들을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동네의 또 다른 오빠는 자신의 변변찮은 목수 재능을 뽐내며 피노키오와 자동차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유치원이나 소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공교육 현장에서 배운 대로 진흙으로 탱크를 빚고 있는 우리에게 동네의 언니 오빠는 알록달록한 색종이와 피노키오로, 그렇게 새로운 상상의 영역을 넓혀주었습니다. 아무리 북쪽이라지만, 그쪽도 사람 사는 이치는 비슷했던지라 어딜 가나 진정한 호모 루덴스들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가끔은 놀이에 과하게 경도된 언니 오빠들을 따라 우산을 펼쳐 들고(마치 낙하산병이나 된 듯) 창고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다 앞니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콩청대(밤청대처럼 콩이 줄기에 달린 채로 구워 먹는 방식)’를 즐기다 새까매진 얼굴로 귀가하여 엄마의 지청구를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우리는 자연을 벗 삼아 흙을 완구 삼아 놀았습니다. 황인제(북한의 공훈예술가, 판화가) 作 ‘콩청대(콩서리)’ 코로나19 사태로 요즘 북한의 어린이들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하네요. 평양을 제외한 지방의 TV 채널은 오직 ‘조선중앙텔레비죤’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게임기나 장난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또 게임기는 긴장한 전력 사정때문에 마음 편히 사용할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해마다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국제기구들에서 다양한 의약품과 식수, 식량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생각의 지평을 넓혀 아이들을 위한 문구나 완구도 지원하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는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그려주고, 어떤 꿈을 심어주는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컬러풀한 세상을 꿈꾸고, 조금 더 다양하게 놀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