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요셉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의정부1동성당 주임 지난달에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복된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께 여행을 떠나자고 말씀드리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는 밭에서 떠날 날이 없으셔서, 사시사철 밭과 농막을 관리할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농막 안에 아버지를 집사(?)로 선택한 고양이가 새끼들을 낳아 아버지의 고민을 더 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꾀를 내어 양로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만나 뵙고 저녁을 다른 숙소로 잡아 1박 2일로 갔다 오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 계시는 양로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세 시간이 넘었습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부모님을 모시면서 내려갈 때, 부모님께서는 차 안에서 천천히 또 급하게 그동안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가시느라 바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담아들을 수 있는 시간도 되었습니다.할머니를 만나 뵙고, 또 고모를 만나 뵌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나며 오랫동안 만나 뵙지 못했던 작은할머니를 향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인 서천에 가까워졌을 때, 문득 아버지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아버지, 지금 만나고 싶은 분이 있으셨어요?” “없어. 다 떠났어.”라고 말씀하셨지만, 강경을 지날 무렵에, “가만있자, OOO는 여기 사는데?” “아버지, 제가 운전하고 있으니 정확히 말씀해 주세요.” “아냐, 그냥 지나가.” “말씀해 주세요.” “OO상회였는데…” 마침내 그곳을 찾아가 아버지 친구분을 만나 뵙고 젓갈을 한 아름 사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 길에 우리는 작은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작은할머니께서는 “살아서 이런 날도 있어. 다시 보다니!” 하시며 한참을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예약해 놓은 숙소에 가서 하루를 자고, 해변을 돈 뒤에, 올라가는 길에 어머니 고향을 들르고 작은아버지를 만나 뵈었습니다. 여행을 갔다 온 뒤, 늘 여행 갈 필요 없다고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이제 여행을 언제 가냐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약속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여행은 저에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아버지의 고향 땅에서 삶을 같이 하였던 그 수많은 사람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이번 여행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다시 되살아 났던 것이었습니다. 또 아버지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변한 모습, 그분들 삶 안에 있는 새로운 소식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새롭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며 일상 안에서 평범하게 부대끼며 보내던 삶이 새로워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길 안에서 얼어있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이 풀리며 저의 귓전을 얼얼하게 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합니다. 그동안 대화가 막혀있었고, 말을 꺼내지 못했던 기억들이 여행길을 향해 먼 곳을 향하던 모두의 마음속에서 하나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여행을 되짚어 보면서 저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여정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갈라진 지 오래되었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무기 개발로 서로에게 위협을 주려는 움직임들이 너무나도 강한 지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저의 부모님께서 하셨던 여행을 통해 제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음들이 아무리 지금은 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 지라도, 기억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도움을 받고 좋은 계기가 마련된다면, 서로에 대한 잊혀진 기대와 약해진 사랑은 얼마든지 되살아나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기억 속에 묻혀 있는 우리 민족 안에 흐르고 있는 깊은 정과 가족으로서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마음에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우리의 세심한 노력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억의 회복을 도와줄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쳇바퀴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기억을 되살려 소중한 가족들을 만나 마음을 풍성하게 하였듯이, 우리도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인 우리 가족 북한 공동체의 사람들을 선입견 치우며,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국제 사회 안에서 홀로 살아남는 외롭고 불안한 존재가 아니라 든든한 형제를 옆에 두고 살아가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고 진정한 화해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 화해의 삶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에서 더욱더 강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