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베드로 주교전 의정부교구장 내가 신 베드로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도쿄에서 교포 사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쿄 교구장이신 시라야나기 대주교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사할린에 살고 있는 신자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꼭 한번 사할린에 방문해 달라는 간절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가기 어려우니 동경교구 사무국장 신부님과 함께 방문하고 오면 좋겠다 하셔서 사할린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사할린은 구석지고 외롭게 보이는 지도의 모양처럼 사할린 동포들은 실제로 역사 안에서도 조국과 일본, 러시아 세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사할린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일제 강점기 때 내려진 ‘국가 총동원령’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머나먼 사할린에 와서 탄광 일이나 길을 내는 토목공사 일들을 하였다 합니다. 1939년부터 종전 전까지, 많은 사람이 징용되어 탄광이나 토목 현장에서 일하다 종전 후에 일부 동포들은 귀국했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의 사할린 동포들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된 후돌아오지못한 한인동포와 후손들의삶을 담은 새고려신문사 이예식 기자의 사진전 ‘귀환’(출처=새고려신문사 이예식 기자) 종전 후 일본 정부는 사할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모두 귀국시켰으나, 조선에서 온 사람들은 외면하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함께 삿포로교구에서 파견된 신부님께 세례를 받은 신 베드로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나 일본으로 떠나는 신부님을 항구까지 따라가 “신부님, 우리도 데려가 주세요.”라며 울며 매달리셨다고 합니다. 사할린에 남겨진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시절, 삿포로교구에서 온 선교사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는데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렇게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었는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사제도 교회도 없는 사할린 땅,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던 소련 체제 속에서 살면서도 어린 ‘신 베드로’는 매일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저녁이 되자 양복으로 갈아입으시기에 어디를 가시느냐고 묻자, 오히려 먼저 “저녁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며 먼저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신 베드로 할아버지를 보면서 사할린에서 교회가 없어진 기간이 북한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북한에도 신 베드로 할아버지 같은 믿음을 지닌 분들이 더 많이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훗날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그 생각이 옳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할린에 머무는 동안, 저녁이 되면 주변에 사는 동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셨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자기는 서울에 있는 정신여고를 나왔는데 지금도 그 학교가 있는가도 묻기도 하고, 한국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데 가 보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조카가 북한의 선전에 넘어가 북한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그 뒤로 아무 소식이 없다는 안타까움을 전하셨습니다. 이런 가족 문제로 사할린 교포들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다며, 언제쯤 남북 관계가 좋아질는지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습니다. 코르사코프 항구의 망향의 언덕 위에 세워진 위령비 사할린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 사는 동포들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어두운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분이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눈을 감기 전, 고향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할머니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사할린 방문을 마치기 전날, 그곳의 가장 큰 도시인 유진 사할린 스크(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열린 동포들의 노인 집회에 신 베드로 할아버지를 따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회에는 ‘일본은 정중히 사과하고 보상하라’, ‘우리는 영주 귀국을 희망한다’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는데 그날 집회의 목적을 말해주고 있는 호소였습니다. 그것은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조국인 한국 정부를 향한 호소이기도 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분들의 간절한 외침을 우리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종 안부를 주고받던 신 베드로 할아버지께서는 몇 해 전, 평생 그리워하시던 하느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분의 굳은 믿음과 조국을 향한 그리움은 지금도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