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티모테오 신부천주교의정부교구 총대리 지구 내 모 단체 임원진 선거가 있었습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극구 난색을 표했습니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표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도 자격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분과의 면담에서 저는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님의 예를 들며,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 도리인 동시에 얼마나 큰 은총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주님의 도구로서 순응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 도구를 통해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다고 설득하였고, 결국 그분은 대표직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주교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구장 임기가 다 되었으니 다음 인사 때 교구 총대리를 맡아 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제안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본래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교구청 업무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자신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얼마 전 그 단체 대표를 면담하며 했던 말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결국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씀드리며 면담을 마쳤습니다. 교구청에서 총대리 역할을 수행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사제가 되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영업자(?)처럼 살다가 남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책상 앞에서 근무하다가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반복하는 생활이 처음에는 무척 힘겹게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직장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달력을 보면 제일 먼저 공휴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직장인이 다 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사제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직함들을 갖고 생활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본당신부의 삶을 제외하고 위원장, 원장, 센터장, 총무, 지구장 등등을 거쳐 이제는 총대리가 되었습니다. 각각의 직함에는 그에 부여된 직무들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생각해 보면 주어진 직무에 내 자신이 충실했느냐의 여부를 떠나, 그 직무 안에 주님의 손길이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 다양한 직책들을 내가 맡은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그분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신 것임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소중한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사실 총대리라는 직무는 제게 무척이나 버거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부담을 넘어 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구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 달라지고 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분명 크게 성장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것, 그 자체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크신 은총일 것입니다. 조금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남과 북의 관계도 생각하게 됩니다.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할 때 과거에는 ‘통일’에 방점을 많이 두었습니다. 하루속히 통일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마음이 급해지면 급해질수록 남과 북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통일에 앞서 필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평화가 선행되지 않는 통일 논의는 폭력의 또 다른 얼굴로 비춰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평화’가 과정이라면 ‘통일’은 결과입니다. ‘평화’가 우리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방식이라면, ‘통일’은 그 방식을 통해 얻어지는 하느님의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은 ‘평화의 삶’입니다. 최근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남과 북을 별개의 두 국가로 상정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미 1991년 남과 북은 별개의 국가로 UN에 등록하였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별개의 국가이지만, 민족 내부적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주창하는 ‘두 국가론’에 과민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두 국가’가 ‘한 민족’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대적’이라는 표현입니다. 남과 북이 아직 ‘정전상태’이니 ‘적대적’이라는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적대적’을 ‘평화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비정상적 정전 체제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남과 북의 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가 아닌 ‘평화적 두 국가’로 우선 자리 잡아야 합니다. 평화를 기반으로 남과 북이 별개의 국가로서 교류와 협력을 이어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통일’이라는 선물이 분명하게 주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평화의 도구’가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평화의 도구’로 불러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