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신자들

이기헌 베드로 주교전 의정부교구장 평양의 장충성당은 현재 북한에 있는 유일한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1988년 10월에 완공되었습니다. 1988년은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해입니다. 이듬해인 1989년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대응하는 국제행사로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했습니다. 장충성당은 이 축전에 참가할 외국인들을 염두에 두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충성당은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미가 있지만, 상주 사제가 없고 정기적인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 성당입니다. 이곳에서는 외국의 가톨릭 대표단이 방문하거나 남한의 사제가 방북했을 때에만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에는 많은 남한의 사제와 신자들이 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저도 몇 차례 방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고, 한 번은 북한 신자들이 공소예절을 드리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장충성당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견이 많습니다. 성당에 참석한 사람들이 당국에 의해 동원된 가짜 신자들이라며, 북한에는 진정한 신앙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반면 2015년 한국 주교단 대표들이 방북했을 때는 장충성당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지방의 신자들이 평양에 오면 이곳을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북한의 유일한 성당인 평양 장충성당] 한때 북한은 교황님을 평양으로 초청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교황청은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실제 가톨릭 신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북한 당국은 신자들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과정에서 확인된 신자 다섯 명이 바티칸의 초청으로 교황님을 알현한 일도 있었습니다. [6.25 이전 북한지역 본당 현황(57개 본당)] 북한에 신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 조선카톨릭교협회 초대 위원장으로 잘 알려진 장재언(사무엘) 선생에게 언젠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임화길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임화길 신부는 제가 대신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부학장 신부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 마음 한편에 장 위원장의 신앙에 대한 의심이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평양교구와 함흥교구의 수많은 신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도원 면속구의 신자들과 박해 속에서도 조용히 신앙을 이어받은 자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가 있습니다.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들어간 9만 명이 넘는 재일동포들입니다. 그들 가운데 단 1%만 가톨릭 신자였다고 하더라도 약 900명의 신자가 북한으로 간 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면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일본 동경에서 교포 사목을 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중국에서 유학 온 신학생에게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들려달라 하였더니, 그는 매우 인상 깊은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중국 신부님이 북한에서 온 청년이 세례를 받는데 와서 대부를 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식이 끝난 뒤 그날 밤, 그 청년과 자신의 집에서 함께 보내며 묵주기도를 가르쳐준 후 함께 기도를 드리고 났더니, 청년은 "우리 고향에서도 여자분들이 모여서 콩을 주우며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기도였군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북한에서도 누군가가 조용히 신앙을 간직하며 다음 세대에게 전해 왔을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북한에서 이렇게 숨어 신앙생활을 했을 분들을 위해서라도 장충성당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신앙의 고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쪽의 우리 역시 장충성당이 신앙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할 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관심과 연대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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