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여든을 훌쩍 넘긴 엄마 생신에 형제가 모였다. 권커니 잣거니 하는 사이 막내 남동생은 불콰해졌다. 일찍 주무시는 엄마는 누워서 자다 깨다 하며 아버지 흉을 보다, 어릴 적 고생했던 얘기를 풀어놓았다.“엄마, 저 좋아해요?”갑자기 남동생이 엄마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갑자기 왜 이르노.”“엄마, 저 좋아하지요?” 작년에도 남동생은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취기를 빌미로 남동생은 엄마에게 사랑고백을 했다. 주책없이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내가 ‘엄마’하고 부를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동생은 술 힘을 빌러 밤이 늦도록 ‘엄마, 엄마’를 불러댔다. 연암 박지원은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형 얼굴을 보았는데, 이제 형이 죽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 시냇물에 자기 얼굴을 비춰봐야겠노라며 슬픔을 달랬다. 죽음은 어쩔 수 없이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슬픔이다. 이 세상 소풍 나와, 본고향으로 돌아가니 서러워하지 말래도 눈물이 난다. 살아있어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은 가족이나 가까운 이, 전혀 모르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체험할 뿐이다.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 제주 터진목. 제주 4.3 당시 성산·구좌면 관내 주민들이 총살됐던 학살터 Ⓒ비짓제주 출판사로부터 제주 4.3에 관련된 작품을 청탁받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4.3 관련 작품이 많아 굳이 나까지 써야 할까 싶어 고사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원고를 쓰게 되었다. 1948년 당시 소년은 8살이었다. 성산 일출봉 터진목 바닷가에서 하르방과 할망, 작은 아방과 막내 아방 그리고 아방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을 만나러 제주도로 향했다. 소년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방이 죽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누나와 소년은 성산 일출봉이 있는 터진목을 향해 달려갔다. 몇몇 아이들도 뒤따랐다. 터진목 해변 모래사장에는 번쩍번쩍 은빛 멸치 떼가 쫙 깔려 있었다. 푸른 하늘엔 새까만 떼까마귀 수백 마리가 날아다녔다. 처음 보는 광경에 정신없이 달려가다 순비기나무 줄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탕! 탕탕, 날카로운 총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어멍은 백일이 갓 지난 막내를 업고 돌하르방처럼 굳어 있었다. 어멍 손을 잡아끌었지만 어멍은 꿈적도 하지 않고 소년만 모래밭에 퍽 쓰러졌다. 조금 전에 넘어져 다친 무릎에 다시 모래가 알알이 박혔다. 그제야 까진 무릎과 손바닥, 얼굴이 쓰라려 눈물이 나왔다. 은빛 멸치 떼는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었다. 모래밭에 쓰러진 사람들 위로 눈부시도록 하얀 햇살이 쏟아졌다. 밀려온 파도가 죽은 시체를 데려갔지만 아무도 시체를 건지러 갈 수 없었다. 파도가 밀려가면 까마귀들이 시체 위로 날아들었다. 모두 폭도들이라 했다. 소년의 가족이 폭도가 된 건, 군인이었던 작은 아방이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며 군대를 나와 한라산으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성산·구좌면을 관할하던 특별중대는 주민들을 혹독하게 고문하다가 대부분 총살했는데, 그 장소가 성산리의 '터진목' 과 '우뭇개동산‘이었다. 강요배 화백의 그린 우뭇개 학살의 처절한 모습. 그다음 날, 소년은 어멍 몰래 성(형)들을 따라 터진목으로 갔다. 서북청년단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끌고 온 사람들을 모래밭에 모아 놓고 총도 아깝다며 죽창으로 찔렀다. 이들도 폭도들이었다. 소년은 밤마다 죽창에 찔리는 꿈을 꾸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지만, 그다음 날이면 성(형)들을 따라 터진목으로 갔다. 죽는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정말로 죽은 걸까? 사람들은 마치 잠을 자듯 가만히 누워 있었다. 저렇게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가 파도가 밀려와 피를 씻겨 주면 벌떡 일어날 것 같았다. 아방도 며칠이 지나면 여느 날처럼 마당으로 뚜벅뚜벅 걸어올 것 같았다.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간 아방이 올 때가 됐는데도 왜 안 오는지 내내 궁금했다. 밥을 먹다가도 퐁낭 가지에 앉은 까마귀가 요란스레 울면 돌담 너머로 눈이 갔다. 소년은 시인이 되었다. 시인이 부르는 4.3의 노래는 화해와 상생이다. 죽음의 시대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이다. 죽음의 시대에는 한 사람 안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혼재해 있다. 시인은 뜻밖의 방문을 받았다. 자신을 작은 어멍의 딸이라고 밝혔다. 4.3사건이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들었던 작은 어멍 이야기가 떠올랐다. 작은 어멍은 시인의 가족을 죽인 서북청년단과 결혼해 마을을 떠났다. 강제 결혼이었다. 자기와 결혼하지 않으면 남은 가족까지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시인을 찾아온 여인은 서북청년단의 딸이자 시인의 사촌 여동생이었다.“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엄마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라 첫 번째 남편이었다고요.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시인은 사촌 동생의 손을 맞잡고 울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죽인 사람(서북청년단)과 살 수밖에 없었던 작은 어멍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구나무 중국 오(吳)나라에 동봉이라는 의사가 살았다. 동봉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치료비 대신 살 구 씨 한 개씩을 뒷산에 심게 했다. 살구씨가 얼마나 많이 심어졌는지, 세월이 흘러 뒷산은 살구나무 숲이 되었다.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살구나무 숲은 생각만으로 흐뭇해진다. 이제 나는 살구나무를 볼 때마다 동봉처럼 사람을 귀히 여기려 노력할 것이다.4월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되새기는 달이다. 우리를 대신해 짊어진 수많은 십자가의 죽음이 살구씨가 되어 살구나무 숲을 이뤘다. 행림회춘(杏林回春), 살구나무 숲에 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