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베드로 주교전 의정부교구장 일본에서 교포 사목을 할 때, 동경교구 사제들이 연수회와 같은 전체 모임을 하며 회식할 때, 종종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한국 신자들에게도 「묵주알」을 쓴 작가로 잘 알려진 나가이 다카시가 쓴 ‘나가사키의 종’에서 유래되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부인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담은 노래라서 이 노래를 부르면 반핵에 대한 생각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노래의 가사에는 원폭으로 잿더미가 된 집터에서 사랑하는 부인의 주검을 발견합니다. 그 곁에는 부인이 평소 즐겨 들고 기도드리던 묵주가 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천국으로 간 부인을 성모님께 맡기며 애통함을 받아들이는 슬픈 노래는 매절마다 나가사키 시민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던 우라카미 성당의 종소리를 표현한 “아아! 나가사키의 종이 울린다”라는 가사가 후렴으로 이어져 이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나가사키 의과대학에서 방사선 의학을 전공하고 만주에서 군의관으로 지낸 이력도 있기에 피폭의 무서움과 평화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원자 폭탄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먼저 투하되었고, 사흘 후인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히로시마 인구 35만 명 가운데 14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25만 명의 나가사키 인구의 7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피해자들 가운데, 3만 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원폭으로 부인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백혈병과 원폭 피해 증상으로 죽어가면서도 잿더미가 된 나가사키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구조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병이 점점 더 심해지자 2평 남짓한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스스로 피폭 환자이자 의사로서 방사선 장애 및 원폭 후유증에 대한 임상 기록과 의학적 보고서를 남겼습니다.그뿐 아니라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나가사키의 종」, 「묵주알」 같은 저서를 남기며 전쟁 방지와 평화를 추구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그의 메시지는 절망에 빠진 일본 사회에 희망을 주었을 뿐 아니라 평화를 울리는 종소리로 울려 퍼졌습니다. 올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지 81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해마다 8월 6일이면 히로시마에서는 원자 폭탄이 떨어진 그 시간에 기념식을 거행합니다. 지난 8월 6일에도 그 기념식이 생중계되었습니다. 총리를 비롯한 지사와 시장 등의 기념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 가운데 히로시마시의 두 초등학생이 함께 <평화의 맹세>라는 제목으로 자신들의 행동 선언을 낭독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원자폭탄의 참상을 전하는 철골 구조가 남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히로시마의 어린이로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평화란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미래를 향해 평화의 첫걸음을 내딛겠습니다.”이 어린이들을 통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평화의 원리>인 “존중하고,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