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안드레아 신부대화동성당협력사목 가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입술이 얇아서 그런가, 말이 많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민화위 위원장을 역임한 이 모 신부님은 ‘말이 많아서 입술이 얇아진 것이 아닐까?’라는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그만큼 다른 이들이 느끼기에 제가 말이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중후함과 묵직함, 말수가 적은 모습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한 것만큼 잘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떠벌이요, 수다쟁이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말재주를 주신 것인지 여기저기 말하러 다닙니다. 특강이니 교육이니 강좌니 하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자리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책도 읽고 자료도 찾아보고, 이를 정리해 순서에 맞추어 파워포인트 작업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많은 시간을 ‘침묵 중에’(!)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때로 빈둥대기도 하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들을 얼마나 이루며 살고 있는가? 입으로만 나불대고 있지는 않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은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다. 실천이 있어야 그 말에 힘이 생기고 진실해진다. 때로 그 결과가 예상과 다를지라도 일어나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움직이고 행동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월례 평화 도보 순례’입니다. 우리 교구 민족화해 사제모임에서는 매월 둘째 월요일에 ‘평화의 길’을 따라 걷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몇 명 되지 않지만,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걷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침묵과 기도의 50분, 10분의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포함해 대략 네다섯 시간 동안 20km 정도를 걷습니다. 말없이 걷는 시간은 모든 생각과 말을 멈추게 합니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과 손가락 사이를 지나는 묵주알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변 풍광이 변하고 소음이 가득해도 마음 안에는 고요함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침묵의 걸음이 새로움을 줍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표현, 그리고 새로운 힘, 그래서 더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작은 걸음, 작은 움직임이 얼마나 큰 힘이 될까?’라고 묻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저 강물도 처음에는 산속 깊은 곳의 작은 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샘이 없었다면, 중간중간 합류하는 작은 물줄기가 없었다면, 저 강도 흐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로만 외치는 소리는 허공에 흩어져 사라질 뿐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 자리에 찍힌 발자국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그 흔적은 다른 이가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생각만 하고 말만 하며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일어나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이가 있다면, 그렇게 나아가는 이의 곁에 잠깐이라도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걸음은 어느새 크고 힘찬 움직임이 될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평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는 현실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평화를 위해 움직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이에 합류한다면,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동한다면, ‘평화를 이루는 일’이 이 땅의 큰 흐름이자 가장 힘찬 움직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10월에는 천주교, 성공회, 불교, 원불교 등의 종교인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생명평화순례’를 합니다. 비록 전체 일정을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을 내어 하루라도 참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