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베드로 주교전 의정부교구장 2005년 11월 한일주교교류모임 @CBCK 2005년 11월, 일본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나하교구에서 한일 주교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역사 안에서도 서러움을 많이 안고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동안 한일 주교 모임에는 별로 참석하지 않으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당시 추기경님께서는 83세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당신이 학도병으로 지내셨던 지치시마란 섬이 오키나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무리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오키나와에는 생전에 꼭 한 번 오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 몸무게가 40kg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실제로 추기경님께서는 3년 후에 선종하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굳이 지난 학도병 시절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고, 함께한 다른 주교들도 건강이 좋지 않으신 추기경님께 굳이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이번에 왜 힘들게 오셨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추기경님께서는 일본 상지대 유학 시절, 당시에 조선인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강제 징집되어 절해의 고도인 지치시마란 곳에서 학도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끌려가 자신의 조국도 아닌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그 섬은 너무 멀고 외진 곳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힘든 생활을 하다 그 섬에서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김수환 신학생은 그 섬에 있는 미군 사령관에게 이 섬에 있는 조선인 학도병들과 조선인 노무자들은 강제로 끌려온 것이니 한국으로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치시마와 가까운 곳에 있는 이오지마의 영웅으로 잘 알려진 유황도에 있는 미군 군종 신부가 집전하는 성탄 미사에 감격스럽게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추억이 있는 지치시마섬이 오키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신 추기경님께서는 오시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교포 사목을 한 덕분에 김수환 추기경님을 여러 번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서울교구장으로 계실 때,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주방 직원들이 쉴 수 있게 하려고, 친척도 있기도 하고 당신의 추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해서 일본으로 명절을 쇠러 오셨습니다.종종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기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참으로 어둡고 괴로운 시절을 보냈던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사셨기 때문에 추기경님의 마음 한가운데는 조국과 우리 민족에 대한 걱정과 앞날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기도 하셨지만, 북녘의 동포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애정과 깊은 연민과 걱정을 종종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런 마음을 교구장으로 계시면서 사목 안에서도 보여주셨습니다. 민족화해위원회가 없었던 시절 교구 안에 민족화해위원회를 세우셨던 것도 그 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나라가 어려운 시절에는 늦은 밤, 경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종종 그런 마음을 사제들과 나누기도 하셨던 시간을 통해 우리들도 사제적인 그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