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베드로 주교전 의정부교구장 2026 노벨평화상 수상장 나바네템 필라이 지난 10월 9일,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올해의 수상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국제법 전문가이자 전 유엔 인권 최고 대표인 나바네템 필라이(Navanethem Pillay)입니다.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법 관련 회의에 참석하던 중 수상 소식을 접한 필라이는 “우리는 국제법과 인권이 심각하게 공격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상을 국제 범죄의 모든 피해자와 국제 정의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분들께 바칩니다.”라는 취지의 소감을 밝혔습니다. 뉘른베르크는 1945년부터 1946년까지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등을 심판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필라이가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 또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특히 이번 수상은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도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194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난 필라이는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직접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차별과 억압의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평생을 국제법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유엔 인권 최고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 두 문제 모두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 중대한 인권 문제임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오늘날 국제법과 국제질서의 정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은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평생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위해 헌신해 온 인물이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어떤 상보다도 노벨평화상이 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북한 인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수상자를 생각하며,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겪는 혹독한 인권침해와 공포스러운 삶의 현실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최근 들어 북향민(탈북자)들이 자신들이 북한에서 겪었던 경험을 증언하는 유튜브 채널을 종종 보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국제 정세와 북한 내 정치 상황에 밝은 전직 외교관들도 있고, 해외에서 유학하던 젊은이들, 북한의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 군인들을 비롯한 평범한 주민들이, 저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북한에서의 실상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위해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이시기에 이러한 증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저는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쓴 『고발』이라는 소설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북한에 남아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한 소설가가 자신이 쓴 글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출간되기를 바라며 목숨을 걸고 원고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정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시도하던 중, 어느 탈북 지원 단체의 지혜로운 방법으로 원고가 북한 밖으로 전달될 수 있었고, 마침내 세상에 출간되었습니다. 이후 이 소설을 30개국에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다룬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평양의 어느 큰 광장 앞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집에 갓난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갓난아이는 광장에 크게 설치된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보면 무서워 자지러지게 울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커튼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정보원이 커튼을 치는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이 가족은 조용히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추방되었다 합니다.” 이처럼 『고발』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은 억압적인 체제 아래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빼앗긴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 주민들을 위해 기도드려야 할 가장 큰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발』 한국어판 표지 『고발』 영문판 표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행된 제도적 인종차별 정책. 백인 소수 정권이 흑인 등 비백인 주민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제한하고 인종 간 분리를 강제한 제도로, 오랜 저항과 국제사회의 압력 끝에 1994년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적 선거가 실시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