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찬 나보르 신부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 부주임신부) 1996년,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 영하 25도의 날씨, 낡고 찢어진 워커를 벗자 새까만 발을 감싼 누런 발싸개가 드러났다. 그마저도 헝겊을 대충 찢어 만든 모양새다. 겉옷도 낡은 외투에 솜을 대충 끼워 넣은 듯 보였다. 25년이나 흘렀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북한 벌목공의 모습이다. 2021년 2월, 이곳 파주 참회와 속죄 성당으로 온 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갑니다. 이곳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며 느낀 것은 ‘추운 동네구나’라는 생각입니다. 바로 옆에 임진강이 흐르고 북한의 개풍군 지역이 바로 보이는 위치이기에 따뜻한 남쪽 지역보다 공기는 맑은 대신에 날씨는 더 춥습니다. 더구나 이번 겨울에는 눈도 제법 내리고 추운 날도 좀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수은주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을 때, ‘이 동네는 왜 이리 춥냐고, 마치 시베리아 벌판에 있는 것 같다.’라고, 같이 사는 신부님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말을 기억했는지 주임 신부님께서 이곳은 추워서 보통 양말로는 버티기 힘들다며 따뜻한 기모 양말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따뜻하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동네를 산책하다 문득 강 건너편 눈이 쌓인 북한 땅을 보면서 오래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만났던 북한 벌목공이 떠올랐습니다. ▲ 북한 벌목공이 러시아 숲에서 벌목 일을 하고 있다. Ⓒ BBC 당시 캐나다 교포인 지인분이 운영하시는 가방 공장에 컨테이너로 원단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를 옮길 일꾼이 필요해 임금이 싼 북한 벌목공들을 불렀습니다. 이른 아침 공장으로 승합차가 한 대 들어왔고 벌목공 4명과 이들을 인솔하고 감시하는 보위부원 한 명이 도착했습니다. 김일성 배지를 단 보위부원은 털모자에 부츠, 두꺼운 외투를 입고 가죽 장갑도 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벌목공들은 다 해진 낡은 외투에 찢어진 신발, 손은 헝겊으로 싸매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새까만 피부와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키에 바짝 마른 몸, 무표정한 눈빛을 보았을 때, 북한 사람을 처음 본 저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반공 만화를 통해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늑대나 돼지의 모습을 한 것으로 알았는데, 나와 똑같은 모습의 그들을 보니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하였습니다. 시간이 되어 컨테이너 트럭이 들어오고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트럭 컨테이너에서 공장 2층으로 원단을 옮기는 작업입니다. 원단은 생각한 것보다 꽤 무거웠습니다. 족히 30킬로는 되는 것 같고 길이도 2미터는 되어 보였습니다. 스무 살의 팔팔한 저였지만 원단을 어깨에 들쳐 매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벌목공들은 그 메마른 몸으로 무거운 원단을 어깨에 짊어지고 잘 도 계단을 올랐습니다. 오히려 무거워 쩔쩔매는 저를 보며 웃기도 하였습니다. 보위부 직원은 작업이 시작되자 담배를 피우며 차에 앉아 있었습니다. ▲ 북한에서 온 세 명의 벌목공이 일을 마친 후,숙소에서 쉬고 있다. Ⓒ Korean Times 쉬는 시간 벌목공들과 간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간식은 양파링 과자와 도시락 사발면을 준비했습니다. 제 옆에 있던 분은 과자를 받고 신기한지 이리저리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과자를 하나 입에 넣으시며 ‘이거이 남조선 과자냐’며, ‘매우 맛이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첫 만남부터 작업 내내, 감시원이 있어서였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분들이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습니다. 속으로는 참 안되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가족 이야기가 나왔고 한 분이 외투 속 지갑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습니다. 부인과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딸 사진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지금껏 무표정한 그분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았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여느 가정의 아빠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희망이 있었고, 무척이나 고되고 위험한 벌목 일도 견디어 내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행복에 대한 가치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고, 내가 오래전 만난 그 벌목공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