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날’을 제정하면서제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 바오로 6세 교황 (1967년 발표) 이 글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2021년 상반기 출간할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 실린 ‘제1차 평화의 날’ 담화의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전문은 추후(게재일 추후 공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홈페이지(www.pu2046.kr) 자료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972년 9월 베니스,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후에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이 되는 알비노 루치아니 대주교 Ⓒ CNS Photo 저는 선의를 가진 모든 이가 1968년 1월 1일, 한 해의 첫날을 전 세계에서 ‘평화의 날’로 기념할 것을 제안하려고 이 담화를 발표합니다. 해마다 시간에 따른 인간 삶의 경로를 측정하고 윤곽을 그리는 달력 첫 장에서, 이 기념일이 매년 하나의 희망, 약속으로 기억됨으로써, 평화가 정의롭고 유익한 균형을 이루며 한 해에 벌어질 모든 사건의 전개 과정을 지배하기 바랍니다. (중략…)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종교적, 도덕적 표현으로 ‘평화의 날’을 준수할 의무를 촉구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같은 ‘날’을 제정하는 것이 시의적절하다고 여기는 모든 이에게 이 ‘날’을 특징짓는 몇 가지 강조점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평화의 날’은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에 맞서 평화를 수호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민족들 간의 관계에 남아 있는 이기주의의 위험과 인류의 일부가 자신들의 생명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해 절망한 나머지 폭력에 호소하게 될 위험이 항상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무기의 위험 또한 오늘날 엄청나게 고조되면서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또한 몇몇 나라가 그 같은 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면서, 다른 많은 이들의 발전을 가로막고 심각한 결핍을 초래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제 분쟁은 법과 정의와 공평에 기초한 협상 같은 이성적 방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직 대량 살상 무기인 핵의 억지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중략…) 다음 한 가지는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평화는 결코 거짓된 수사(修辭)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거짓된 수사는 때로 인류가 가진 깊고 진실한 열망에 답할 수도 있어 환영받을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평화의 참된 정신과 평화를 향한 진정한 노력이 부족한 현실을 가리는 데 종종 남용되었고 지금도 악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억압과 당리당략을 위한 계산과 행동을 감추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평화의 견고한 토대들 - 즉 국가 간, 각 국가 영역 간, 시민들 상호 간 그리고 시민들과 통치자와의 관계에서 성실, 정의와 사랑이라는 토대 -위에 시민, 문화, 도덕, 종교의 모든 표현에서 개인과 민족의 자유라는 토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평화에 관해 올바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같은 인식이나 존중 없이도 압제가 질서와 합법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는 진정으로 있어야 할 평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폭동과 전쟁이 끊임없이 야기되어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중략…)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제가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끊임없이 숙고하고 또 권면해 왔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그저 습관적으로, 아니면 이 시대에 흥미를 끄는 주제를 이용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보편 교회의 목자인 저의 의무라 믿기입니다.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고 그 결과 모든 민족, 심지어 인류 대부분이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금세기 역사에서 최근 몇 년간 야심 찬 민족주의가 초래한 국제적 긴장도, 폭력적인 전복도, 거짓된 시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을 억압하는 것도, 인간 진보를 위한 방향이 될 수 없으며 평화야말로 인간 진보를 위한 유일하고 참된 방향이라는 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며, 그분의 기쁜 소식은 “평화의 복음”(에페 6,15)이니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를 선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평화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항상 평화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세계 모든 이가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이루고, 평화를 수호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 국가주의적 경쟁, 군비 강화, 혁명 도발, 인종 증오, 보복 심리 등 - 전쟁을 부추기는 전주곡들에 맞서, 반드시 타도해야 할 적을 마취시키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정의와 의무와 희생의 감각을 마비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전술적 평화주의의 올가미에 맞서 우리 시대와 미래 세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리 · 정의 · 자유 ·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에 대한 의식과 사랑을 일깨워야 합니다(「지상의 평화」 참조). 그러니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가 1968년 새해 첫날을 평화라는 숭고한 대의를 기리는 거룩한 날로 삼읍시다. 저의 사도적 축복이 여러분에게 내리고 언제나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1967년 12월 8일, 바티칸에서, 바오로 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