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이라크 전쟁 중, IS와 미국을 피해 피난 길에 오른 이라크 사람들 ⓒBBC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바그다드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합니다. 제2차 걸프전이라고도 불리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무차별적으로 앗아간 9.11 테러를 겪은 미국 국민의 다수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을 가진 군사적 방식에 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대테러 전쟁’ 총사령관을 자처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한 뒤,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고, 중동에 민주화를 확산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독재자 후세인이 제거된 뒤에도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내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대량살상무기는 유엔에서조차 논란이 많았는데, 미국과 함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주장했던 영국의 블레어 전 총리는 훗날 이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잔혹한 폭력의 대명사가 된 ‘이슬람국가(IS)’ 활동에도 원인을 제공한 이 전쟁이 과연 중동에 민주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남습니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전쟁을 통해 이라크와 주변국의 민중들은 훨씬 더 참혹한 고통을 겪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개전 초기 미국의 군사작전은 아주 손쉽게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전쟁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십만의 무고한 인명이 더 희생당한 뒤 미국은 2011년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억지로 종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미군이 철수한 이라크에서는 기나긴 내전이라는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3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라크 모술 지역에 방문하여, 전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있다. Ⓒ 동아일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라크 방문 소식을 접하면서 당신 스스로가 ‘평화의 순례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코로나19의 어려움뿐 아니라 테러의 위협까지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로하신 교황님께서는 평화를 위한 당신의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특별한 여정을 시작하시면서 교황님은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화의 순례자로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교황님은 이라크 남부 도시 나자프에서 이슬람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를 만나셨는데, 가톨릭의 교황과 이슬람 시아파 최고 성직자가 만난 것은 2000년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이 만남은 이라크 전역에 생중계됐다고 합니다. ‘참회하는 평화의 순례자’로 자신을 호명하시는 교황님은 우리와는 다른 믿음을 가진 이슬람 지도자와의 만남이 ‘내 영혼의 유익’이었다고 평가하십니다. 오랜 갈등과 분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서방 세계에 대한 분노가 더 큰 폭력이 되기 쉬운 그 땅에서, 순례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과 행동은 분명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역시 교황님의 그런 마음을 닮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폭력과 권력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는 욕망에서 벗어나 나의 허물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신앙, 나와 다른 사람들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