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빈 멜라니아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샬롬회 회원 영화 <우리학교> 포스터 ‘내가 만난 재일조선인’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나는 언제 처음 재일조선인을 알게 되었던가 돌아봅니다. 많은 이에게 그렇듯, 재일조선인과의 첫 만남은 역시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보았던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갓 예술학교에 입학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저는 ‘다큐멘터리의 이해’라는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1922년 미국에서 제작된 ‘북극의 나누크’부터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룬 ‘상계동 올림픽’, ‘송환’, ‘경계도시’까지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수업이었습니다. 혹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역시 이 수업을 통해 처음 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김명준 감독이 일본 삿포로에 소재한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3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함박눈이 폭폭 쌓이는 삿포로의 겨울 풍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혐오와 차별 속에서도 여느 10대와 다를 것 없이 밝은 아이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속 고급부 3학년 아이들의 모습 Ⓒ 영화 <우리학교> 스틸컷 스무 살 무렵 처음 ‘우리학교’를 보았을 때는 영화의 주인공 격인 고급부 3학년 학생들에 유달리 애정이 갔습니다. 영화 속 고급부 3학년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아주 특별하고 따뜻한 존재로 그려진 덕분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던 당시의 제 나이가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들의 나이와 거의 같았기 때문입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서울에 왔던 외로운 봄, 저는 12년간 같은 학급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고급부 3학년 아이들을 내심 부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학교’가 개봉된 것이 2007년이고, 영화 촬영은 그보다 더 전이었음을 고려하면 사실 영화 속 고급부 3학년 학생들은 실제로는 저보다 몇 살 위의 언니 오빠들입니다. 이후 여러 기회를 통해 이 친구들의 ‘우리학교’ 이후의 삶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후 다양한 길을 걸었고, 조선학교로 돌아와 교원이 된 친구들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2월에는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혹가이도 조선학교를 실제로 방문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영화 속, 학교에서 아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던 박대우 선생님이 이제는 교장 선생님이 되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영화 속 운도회날, 3학년 학생들의 모습 Ⓒ 영화 <우리학교> 스틸컷 지난해, 혹가이도 조선학교 방문을 앞두고 다시 ‘우리학교’를 보았습니다. 고급부 3학년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며, 각별한 배려심과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남학생을 선망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던 첫 만남과 달리 이제는 학생들이 아닌 교원들, 즉 조선학교의 선생님들에 자꾸만 시선이 갔습니다. 영화 속 아직 앳된 얼굴이었던 박대우 선생님이 중년의 교장 선생님이 되셨듯, 이제는 저 역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선생님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버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서강대학교 학생들과 조선학교 아이들의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를 위해 한동안 조선학교를 자주 방문했습니다. 조선학교 교원들은 대체로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도쿄의 조선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첫 발령을 받아 전국 각지의 조선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됩니다. 제가 조선학교에서 만나고 교류했던 선생님들도 대체로 저보다도 어린 20대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영화 속 리호미 선생님처럼 평생을 민족교육에 헌신하는 교원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여성 교원들은 결혼과 함께 교직을 떠나고, 남성 교원들 또한 대체로 청년들이 많습니다. "차별하지 마세요"… 在日 조선학교 '공개 수업' (2019.11.16.) Ⓒ MBC 뉴스데스크 아마 유독 교원 가운데 청년의 비중이 높은 것은 적은 급여와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야 하는 교원들의 일상 때문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대체로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조선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외지로 부임한 선생님들은 교원 숙소에서 지내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오직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일하며 괴로움도 기쁨도 함께합니다. 20대 후반, 30대에 들어서며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조선학교 교원으로 계속 일하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또래의 선생님들과 만날 때면 자주 서로 “왜 애인이 없는가?”, “우리는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일이 바빠 시간이 없을 뿐이다” 하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라고 사생활이나 개인 시간이 부족한 교원 생활이 고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또래의 젊은이로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직업 선택의 큰 기준이었던 사람으로서 민족교육을 잇는다는 보람과 아이들을 돌보는 기쁨으로 일하고 있는 조선학교 교원들이 존경스럽기만 했습니다. 학교와 지역 재일조선인 커뮤니티가 단단하게 결합한 조선학교의 특성상 교원은 단순히 직업으로서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사람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사명감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혹가이도 조선학교 교원들의 모습Ⓒ <우리학교>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ourschool06) 조선학교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도 저는 내내 아이들보다도 또래의 선생님들에 자꾸만 눈길이 닿았습니다. 특히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치마에 고운 빛깔의 저고리를 갖춰있은 여성 교원들을 보면 왠지 더 애틋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부와 명예가 따르지 않는 고된 길에 기꺼이 나선 젊고 맑은 그네들이 참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가부장 문화가 깊게 남아있는 재일조선인 사회를 지켜보며, 90년대생 여성으로서 그네들이 겪을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을 헤아려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를 덮치고, 한일 무비자 입국이 중단되며 한때는 두 달에 한 번 방문하던 조선학교를 찾지 못한 것이 벌써 1년입니다. 그리운 마음에 조선학교 페이스북 페이지를 살펴보면, 여전히 기쁨과 헌신으로 온갖 일을 맡아 해내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여실히 느껴집니다. 새 글이 올라올 때면 고되고 바쁜 나날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조선학교 선생님들이 행복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선생님들이 자기만의 시간도 좀 더 가지고 연애도 하면 좋겠다고 홀로 생각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