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토마스) 신부 | 참회와 속죄의 성당 협력 사제 무모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달팽이가 어떻게 순례를..? 언제...? 정말...? 갈 수 있을까?그런데 시작하였습니다.언제까지...? 예, 지금도 달팽이 마냥 걷고 있습니다.달팽이가 걸으면 얼마를 가겠습니까?그래도 기어 움직입니다. 등에 자기 집을 걸머지고 조금씩...아직 조금씩 어딘가를 향해 꾸준히 갑니다. 본래 걸어가는 것을 피해 살아왔습니다. 오래전부터 디스크에 요추협착에, 게다가 퇴행성 관절염까지 허리를 편히 쓰지 못하는 상태에 있어 왔습니다. 그러니 순례는 생각해 보지도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달팽이가 되어 달팽이처럼 순례를 시도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참회와 속죄 성당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회’를 하고 있었는데 2019년 돼지열병으로 그리고 코로나19로 기도회도, 순례기도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4월 2일 성지주일에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을 모시고 평양의 장충성당으로 걸어가는 어마어마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성지주일에 벳파게에서 예루살렘까지 이스라엘에 와 있는 세계 여러 나라 공동체가 참여하여 걷는 행사에 함께한 기억이 났던 것이지요.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주보는 “평화의 모후 마리아”입니다. 평양의 장충성당의 주보는 “매괴(로사리아)의 모후 마리아”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모시고 순례를 하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해도 되는데 왜 걷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순례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본 것입니다. 순례란 말은 지극히 종교적 용어이면서 다양하게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느님께로 향하여 걸어가는 기도 행위입니다. 순례는 수행자의 길이며 참회 행위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은혜를 청하는 행위이며 받은 은혜에 감사의 행위로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 전래되어 왔습니다. 가는 과정에 특별한 지향이나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지향기도는 하늘을 감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간절한 원의가 하늘의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천사들과 성인 성녀들 모두를 흔들어 간청하는 몸부림의 발걸음입니다. 그것도 북한의 없어졌던 57개의 성당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분단된 나라는 우리나라 하나뿐입니다. 갈라져 있는 한 민족의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이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바로 나입니다. 그것도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애절한 기도를 드려야 할 이는 바로 나, 우리입니다. 지금 달팽이 순례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평양을 거쳐, 시작한 김에 평양 교구 성당을 성모님을 모시고 가보고자 평양에서 중강진으로 그리고 의주, 신의주로 다시 정주, 안주로 돌아 진남포로 향하고 있습니다. 신의주성당(신의주 진사동 성당), 1922 Ⓒ파주 민족화해센터 북한천주교회사박물관 북녘교회를 순례하는 것은 그동안 무관심으로 잊힌 북녘교회 공동체를 만나는 것입니다. 북녘교회 신자 공동체가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교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 애절했던 지난날의 역사, 피어린 희생, 그리고 구원의 흔적 하나하나를 통해 그동안의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성모님과 천사들이 장미꽃으로 수놓아주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순례로 북녘 공동체가 있던 성당들을 이어 장미꽃밭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보려 합니다. 없어진 57개 성당들을 장미 벽돌로 다시 지어보려 합니다, 달팽이 순례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 순례에 동참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함께 북녘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순례하시는 분들이 함께 사람의 힘으로 부술 수도 없고 다시는 사라지지도 않을 단단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지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안내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