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수료) 얼마 전 회사에서 ‘사랑 나눔 헌혈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요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혈액 수급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합니다. 2020년 헌혈자 수가 2019년보다 18만 명이나 줄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외출과 사람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는 분위기가 헌혈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사람 나눔 헌혈 캠페인 Ⓒ KTV 방송, ‘통일 NOW’ 갈무리 회사 근처에 자리한 헌혈 차량을 보며 문득 북한의 헌혈 문화가 떠올랐습니다. 북한의 헌혈문화는 매우 집단적입니다. 우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헌혈이나 피부 이식 등을 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의료부문 종사자들은 종종 “자신의 피와 살을 동지들을 위해” 나눠주곤 합니다.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대표적인 관영매체들에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에게 의료일꾼들이 자신의 피와 살을 아낌없이 바치는 ‘아름다운 소행’들이 단골 메뉴로 등장할 정도입니다. 북한은 헌혈 대신 수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집단적인 수혈문화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종종 생깁니다. 특히 혈액이 대량으로 필요한 경우 병원 주변에 자리한 공장이나 학교, 군대에서 사람들을 집단으로 동원하거나 병원의 수혈차가 긴급하게 현장을 돌면서 채혈하기도 합니다. 물론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기꺼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수혈에 동원되는 것이 정말로 두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집단으로 이동하여 수혈하는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죠. “자신의 피까지 수혈했던 북한 의사들”, SBS뉴스 기사(2020.12.23.) Ⓒ조선중앙TV 갈무리 어렸을 적 제가 살던 지역에서 큰 사고가 났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즉시 병원 주변의 공장, 기업소, 대학교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직장별, 학급별로 줄지어 병원으로 이동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빠지는 것은 비겁하게 여겨질 뿐만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친구의 오빠는 수혈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기 전 집에 와 몰래 약 두 봉지를 챙겨가 먹었습니다. 변비에 쓰이는 완하제를 초과 복용한 그 오빠는 결국 수업이 끝나 병원에 수혈하러 가기 전 증상이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병을 핑계로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친구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 숙제를 하면서 놀기로 했던 저는 이불을 쓰고 누워 아픈 척을 하고 있던 친구의 오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도, 놀러 갔던 저도 그 오빠의 병세를 걱정했고, 친구의 어머니는 약국을 다녀오신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친구와 저를 바라보던 그 오빠는 멋쩍게 웃으며 “나 괜찮아, 그냥 병원에 가기 싫어서 꾀부리는 거야”라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듯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댔습니다. 조금 후에 친구의 어머니가 약을 사와 아들에게 먹였고, 볼 일이 있다며 외출을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의 오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여 놓았습니다. 사연인즉 수혈이 싫어서 일부러 약을 먹고 이 상황이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우리에게 그 오빠는 아주 중요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 나지막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대학이나 공장 같은 델 가면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어. 그리고 누가 피형을 물어보면 무조건 AB형이라고 해.” 왜 그래야 하냐고 묻자 AB형이 수혈을 당할 확률이 가장 낮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혼잣말로 “난 O형인데”라고 하자 눈이 둥그레지면서 “너 공산주의 피형이구나. 앞으로 절대 어디 가서 O형이라고 말하지 마. 안 그럼 네 피를 다 줘야 할지도 몰라” 하며 다짐을 받아냈습니다. 친구 오빠의 설명에 따르면, O형은 모든 사람에게 피를 줄 수 있는 ‘공산주의 피형’이고, 대신 AB형은 모든 사람에게서 피를 받아도 되는 ‘돼지 피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세계급혈자의 날’ 관련 행사Ⓒ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전반적으로 안 좋아지면서 수혈을 꺼리는 현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집단적인 헌혈문화에 대한 반감도 공공연하게 드러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든데, 피까지 뽑으면 어지러워서 일할 수가 없다며 대놓고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수혈소’라는 곳이 생겼고, 거기서 피를 산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피를 정말로 팔았다는 사람은 보았습니다. 북한의 수혈문화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많은 탈북민들이 헌혈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북에 있을 때 헌혈을 하면 겨울에는 손이 더 시리고, 여름에는 손끝이 저리다는 얘기를 하도 듣다 보니 헌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북한에도 누군가의 시선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헌혈에 동참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