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희 안젤라(연세대 정치학 박사수료) 상상 밖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지금은 이루지 못하지만 언젠가 실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구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터무니없다 생각한 상상을 구현해 내면서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가전제품을 이용할 수 있고,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상대와도 언제든 어디거든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인류의 상상은 지구를 넘어 미지의 영역이라 불리던 우주까지 확장된다. 화성에 우주선을 쏘아 올려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열겠다는 미국의 한 혁신적인 사업가의 구상이 실현되기까지 앞으로 30년이 채 남지 않았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렇듯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상상의 범위와 크기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인류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남북관계를 평가해 볼 때,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반도에 대한 다채로운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는가 여부에 언제나 회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점은 개인 간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물질적인 분단을 넘어, 정서와 감성, 인식, 인지의 영역까지도 휴전선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비물질적 분단 체제가 공고화 된 까닭이다. 국내에서 생활하는 북한이탈주민이 점증하고, 이들을 주요 소재로 하는 미디어 콘텐츠도 많아지면서 어느정도 북한 사정에 대해 민간 영역이 알게 되는 부분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와 문화에 대해 우리가 인지하는 정도가 주변국인 일본 혹은 중국보다 높은지 생각해본다면, 주변국보다 북한을 더 많이 안다고 논하긴 어려울 것 같다. 특히 북한을 단 한 번도 방문해 본 적 없는 이들에게는 더욱. 국가보안법과 상상의 자유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 TV' 유튜브 계정 우리가 북한을 접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한정적이다. 북한에 대한 자료는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유통되며, 이마저도 굉장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북한에서 배포된 자료를 소지한다면,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존재한다. 일전에는 북한 대남 선전선동기구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에 일반인이 팔로우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시된 적 있으며, 더 예전에는 북한의 영화나 서적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처벌을 당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국내에서 출판된 후 이적표현물 논란으로 판매 중지가 되었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보안법 적용 범위가 이전보다 축소된 것은 사실이다. 현재는 단순히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기보다, 명백한 이적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처벌받는다. 최근에는 북한이 공격적으로 대외 선전선동 활동을 인터넷을 통해 진행하면서 웹상에서의 북한발 콘텐츠는 일반인이 접속하기 쉬워졌다. 특히 젊은 세대가 활용하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북한 관련 콘텐츠가 유통되거나, 자체적인 웹사이트를 제작하기도 한다. 과거 북한이 다소 촌스럽게 제작한 영상도 조금씩 현대화되고 젊은 세대를 겨냥한 콘텐츠가 배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채널들은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 정부의 검열에 의해 국내에서 접속이 제한되는 경우가 잦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 도서출판 민족사랑방 제공=국민일보 국가보안법의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동조죄, 이적표현물 소지죄 등은 개개인의 양심과 학습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도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여전히 분단 상황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으로라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의해 존립되고 있는 법조항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사고의 범위와 폭을 지속적으로 제한하는 부작용을 지닌다. 북한에서조차 김일성 주석이 던진 솔방울이 수류탄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할만큼, 더는 북한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가 북한 사회내에서도 통용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바퀴를 꾸준히 발전시켜오며 성장해 온 한국이 북한발 콘텐츠에 쉽게 세뇌되어 북한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이적하는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권리 북한에 대한 정보와 접촉을 국가 차원에서 차단할수록 한국 사회의 대북 및 한반도 관련 상상력도 축소되고 한정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가 동북아시아를 떠올릴 때, 한국·중국·일본 이 3개 국가만 떠올릴 뿐, 해당 지역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한은 너무 당연하게 제외되는 것일 테다. 일본과 한국, 중국이 지닌 자본과 기술, 노동력 그리고 인구를 합산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3개국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FTA)을 비롯해 유럽과 같은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지역주의(regionalism)적 상상을 펼쳐보기도 하지만 어김없이 중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북한은 거론되지 않는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북한신문 기사목록’ 공개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웹사이트 캡처 우리에게 금기시되는 공산당이 일본을 비롯해 자본주의의 선봉인 미국에서조차 정당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익숙지 않다. 더군다나 일본 공산당은 국내 정치 체제에 나름의 민주주의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일본과 수교를 하지 않은 북한은 일본의 공산당과 친북 민족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을 통해 일본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접선하기도 한다. 우리가 북한과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항상 국가라는 존재에 가로막히고, 북한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 어린 생각만으로는 북한발 콘텐츠에 자유롭게 열람할 수 없는 환경은 인식의 폭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한다. 분단 70년간 물리적 장벽만 남북관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인식의 장벽 역시 그 시간만큼 쌓이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5월 중순, 통일부가 북한의 조선로동당의 당기관지이면서도 북한 체제를 대변하는 로동신문의 인터넷 열람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휴전선 이북으로 존재하나, 우리의 인식과 정책 영역 안에서는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북한에 대해 앞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상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