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전화벨이 울려 받았더니, 멀리 있는 친구였다. 라디오에서 ‘어부의 노래’가 나와 고맙게도 내 생각이 났단다. 농부의 딸인 내가 ‘어부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고향이 바닷가냐?’는 질문을 받곤 했었다. 내 고향은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하얀 모래톱이 반짝이는 농촌 마을이다. 오래전, 유성룡이 안동 하회마을에서 징비록을 쓰면서 찬탄했던 낙동강 금모래 밭. 우리 마을을 흐르는 내성천 모래톱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름이면 우리들은 그 모래톱이 있는 강에서 살았다. 학교보다 물가를 더 좋아했던 남동생은 족대 없이 맨손으로도 붕어와 미꾸라지, 메기와 쏘가리를 척척 잡아 올렸다. 물놀이를 하다 지치면 너나없이 흰 모래사장에 누워 해바라기를 했다. 찬물에 시퍼레진 입술이 금세 본래대로 돌아왔고, 젖은 옷도 바싹 말랐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슬금슬금 밭으로 가 참외를 따 먹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북한 마을이 가까이 보인다ⓒ연합뉴스 자료사진(2021.01.18.) 고향을 떠나와 북한이 지척인 동네에 살다 보니, 북한과 관련된 일에 마음이 가고 신경 쓰이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몇 년 전 ‘통일 캠프’에 참가하게 되어 북한을 탈출한 여성을 만났다. 남한에서 결혼해 5살 딸아이를 둔 엄마였고,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제법 친해졌을 때쯤, 그녀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내 질문 속에는 ‘행복하다’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에두른 그녀 대답에 내 마음이 먹먹했다.“만약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당국에서 잡아가지 않는다면 북한에 남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고, 동무들도 만나고 싶어요. 고향 집이 그리워요.”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체제가 싫어 그곳을 떠나 왔든, 보다 나은 삶을 갈망한 이주였든, 그곳은 그녀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이니까.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갈 수 없는 고향 마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그리움을 달래는 이가 많다고 한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건 마음 한켠이 푸근해지는 일이다. 우리처럼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고향이어도 그립고 애틋하다. ‘고향’이라는 말은 정다운 가족과 벗들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갈 수 없기에 더 가고 싶고, 더 그립고 더 애틋한 법이다. '노획 북한문서'라는 이름으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보관된 한국전쟁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편지 Ⓒ삼인 그동안 얼마나 수고하시우. 급작한 명령에 의하여 그날 밤(10월 10일)으로 평양을 떠나 지금 강계로 피난 가는 길인데 걸어가니 다리가 무르터서 걷지 못하고 기어 지금 사인장 왔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막연하외다. 어머님은 양덕으로 떠나갔습니다. 정세가 이같이 변하니 참말 조급합니다.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될는지 이 편지가 어느 날 그곳에 갈는지 막연합니다. 어머님께 3천 원 쥐어 보냈는데 이제는 돈 보낼 일도 막연합니다. 어린 아해(아이)들을 맡겨놓으니 겨울날 일, 앞으로 지낼 일 참으로 가슴이 막힙니다. 어떻든 목숨만 붙어놔주시요. 아해들 어떻든 잘 길러주시오. 정세가 좋아지면 곧 만나겠지요. 급한 길가에서 씁니다. 들 앞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만약 이 편지가 간다면 다음 주소에 편지하시오. - 강계 국립건설은행 북지점 한운봉 1950년 10월,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였다. 남편은 평남 양덕군 석리에 살고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어쩔 수 없이 자강도 강계로 혼자 떠나는 피난길이라 남편 마음은 무척 애달프다. 전쟁 중이라 고향에 남겨진 아내와 자식 걱정뿐이다. 10월이면 인천상륙작전을 치른 미군이 석리에 닿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이 편지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 보관돼 있는 전쟁 노획물이다. 문서 상자 1138번과 1139번 두 곳에 편지 728통과 엽서 344매가 들어 있었다. 1068통의 주인 잃은 편지들이 누렇게, 시퍼렇게 빛을 바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민군대 나간 남편에게 아내가 쓴 편지, 인민군 여전사가 고향의 어머니한테 쓴 편지, 아내에게 세간에 미련 두지 말고 빨리 피난을 떠나라고 다그치는 남편의 편지, 월북해 인민군이 된 아들이 전라도 고향의 어머니한테 소식도 못 드리고 입대해 죄송하다며 쓴 편지, 폭격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 사망 소식을 ‘놀라지 말라’면서 함경도 누이에게 전하는 오라버니의 편지, 염치를 무릅쓰고 부탁드린다면서 속옷 양말, 발싸개 등을 사가지고 빨리 면회와 주십사 아버지한테 떼쓰는 인민군 특무장 아들의 편지, 어머니와 헤어져 평양 빈집에 홀로 남은 아들이 고향 형한테 쓴 편지, 평양의 관리가 중국 요동성의 애인에게 쓴 편지, 모스크바의 아내가 평양의 남편에게 쓴 편지, 아이들 죽이지 말고 잘 길러 달라고 아내에게 신신당부하는 남편의 편지… 남에서 북으로 올라간 편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편지… <엮은이 이홍환 글>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이흥환 편, 삼인, 2012.04.10 70여 년이 지나도록 전해지지 못한 1068통 중 113통의 편지와 엽서를 묶어 책으로 엮었다. 이 책 제목이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다. 엮은이는 지극히 사적인 편지를 책으로 엮은 이유를, 애타게 소식을 기다렸을 누군가에게 편지가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노라 밝혔다. 편지는 보내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애틋하다. 70여 년이 지난, 비록 너무 늦은 편지겠지만 꼭 가 닿았으면 좋겠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아아 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내 이름을 부르며 버선발로 달려 나와 줄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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