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다(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우리 집 뒤에 야트막한 산이 있다. 아침마다 산은 무지 시끄럽다. 새들의 폭풍 수다는 운동장에서 뛰어놓는 아이들 고함소리 못지않다. 산은 그 소란함을 묵묵히 듣고 있다. 무심한 듯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자리 잡은 산은 어디 새들 뿐일까. 온갖 생명을 다 품는다. 나 어릴 때도 동네에 뒷산이 있었다. 뒷산은 우리들 놀이터였다. 뒷산에는 일반 무덤의 10배정도 되는 무덤이 두 개 있었다. 큰 집 작은 집, 편을 나눠 서로의 집(무덤)을 차지하며 놀았다. 집 뺏기 놀이가 시시해지면 숨바꼭질을 했고, 이것마저도 시시해지면 굴참나무에 매달아 둔 그네를 탔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잘 익은 산딸기를 따 먹었고, 어른들 틈에 끼여 고사리를 꺾고 버섯도 땄다. 그런데 누구든지 드나들던 뒷산에 주인이 있다고 했다. 뒷산을 산 사람은 다름 아닌 자전거방(가게)아저씨였다. 내가 자전거방을 지나갈 때마다 아저씨는 사람 좋은 얼굴로 나를 불러 세웠다.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다 바람 빠진 타이어를 넣어 양손으로 주무르면서 배꼽 빠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깔깔거리는 내가 귀여웠든지 꿍쳐둔 사탕을 슬그머니 꺼내 주셨다. 난 아저씨가 좋았다. 아저씨는 늘 자전거방에 계셨다. 한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 자전거를 고쳤다. 한평생 자전거방에서 모은 돈으로 뒷산을 산 거였다. 뒷산 한 귀퉁이에다 집을 지은 후 이사를 갔다. 뒷산 주인이 된 아저씨는 자전거 고치는 일을 하지 않았고, 새로 지은 멋진 집에서 사셨는데도 시름시름 앓았다. 산의 기운을 받아 건강해지고 싶었던 아저씨는 이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뒷산 주인이 다시 바뀌었다. ‘땅 임자가 바뀌었으니 함부로 오르지 마시오.’라는 경고처럼 산 가장자리에는 철조망이 쳐졌다. 그네가 매달렸던 아름드리 굴참나무도 무참히 베어져 나갔고 무덤도 사라져버렸다. 뒷산은 과수원으로 변했다. 그래도 가을이면 상품가치가 없는 사과가 동네사람들에게 거저 주어졌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난 후, 과수원은 사슴농장이 되었다. 가끔 시골집에 가서 보면 녹용을 사러, 사슴피를 마시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꺼이 꺼이, 사슴들 쇠 된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외할매네 집 헐린다.”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있는 듯했다. 100년도 더 된 외할머니네는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우리 집과 마주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시집오기 전부터, 외할아버지가 자랐던 곳이며, 외할머니가 시집와서 5형제를 낳고 키웠던 곳이었다. 우리 가족의 추억과 나와 언니의 여고시절 추억까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 마루에 서면 끝없이 펼쳐진 논이 한눈에 들어왔다. 넓은 마당에는 닭들이 뛰놀았고, 대문 옆 돌배나무 아래에서는 게슴츠레한 누렁이가 엎드려 늘어지게 하품도 해댔다. 뒤꼍에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린 감을 자랑스레 내놓았던 감나무가 서 있었고, 알 굵은 앵두가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할머니가 일궈놓은 고추며 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렸던 텃밭도 있었다. 이런 외할머니네 집이 헐리게 된 것도 사슴농장과 무관하지 않았다. 100년을 살았건 200년을 살았건 할머니네 집터는 서류상 뒷산(사슴농장) 주인 소유였다. 할머니네 집뿐만 아니라 5-6채의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100여 년 동안 쌀 서너 됫박으로 거저 사는 집에 대한 고마움을 땅 주인에게 표시했다. 딱히 뒷산 소유라기보다 자기 집이려니 생각하며 조상대대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터에 대한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비싸졌다. 그마저도 감수하고 집을 지켜냈는데, 갑자기 제값을 내고 집터를 사라는 거였다. 통보였다. 어른들은 욕심을 탓했다. 지나친 탐욕을 탓하며 어쩔 수 없이 집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불도저가 집을 마구 때려 부수는데 가슴이 털컹 내려앉더라. 바람 불면 훅 쓰러져 내릴 집이래도 집이 내려앉는데, 울 어매를 때리는 것 같고, 우리 어매를 지켜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더라...... 외할매가 돌아가시고도 집이 있으니 외할매가 항상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 좋았는데.....” 외할머니 집은 엄마에게 집이기에 앞서 당신의 어머니였다. 당신 눈앞에서 어머니가 불도저의 극악무도한 힘에 아무 저항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들 어쩌겠는가. 땅 주인이 자기 땅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콩 나랴, 팥 나랴 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개인의 사유재산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으니. 세월이 흘러 흘러온 탓에 외할머니 집과 뒷산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 버렸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아멘.’욕망의 바벨탑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재의 수요일에 했던 고백이 죽비가 되어 내 어깨를 내리친다. 오늘도 새벽부터 산은 시끄럽다. 산은 받아들일 수 있는 한 모든 걸 욕심껏 품는다. 그러나 그건 탐욕이 아니다. 생명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 속에 깃든 마음까지도 헤아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해타산(利害打算)부터 따졌다면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걸 받아들이지 않았을 게다. 산은 미련하게 모든 걸 품는다. 또 그래야 산답다. 아니, 산이라 대접 받는다. 산이 가까이에 있다는 게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