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저의 형제입니다 제4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바오로 6세 교황 (1970. 11. 14. 발표) Mosaic based on Norman Rockwell’s“The Golden Rule” painting (1961). Wikimedia 평화는 특정한 “선택의 증명서”(identity of choice), 곧 이것이 ‘우애’(friendship)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관계들(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불가피합니다. 이 관계들은 성장하며 필수적인 것입니다.)의 부재보다, 혹은 사리사욕의 관계들(이 관계들은 불확실하고 종종 기만적입니다.)의 존재보다, 혹은 순전히 문화적이거나 우연의 관계들(이 관계들은 평화를 노리거나 다툼을 노리는 칼의 이중 날이 될 수 있습니다.)의 망보다 더 본질적인 토대들 위에 평화를 세워야 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반드시, 정·무형의 인간 존엄에 대한 의식·사람들 사이의 영속적이고 행복한 평등에 대한 인식·인간 형제애라는 기본 원리 위에, 곧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각각의 사람을 마땅히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기본 원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성공을 약속하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형제, 우리 형제입니다. 보편적 인간 형제애라는 이 의식 역시 적어도 원리 측면에서지만 다행히도 우리 세계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우리 형제라는 신념을 갖고, 자라나는 세대들을 교육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초부터 평화라는 건축물을 짓고 있습니다. 여론에 아무런 조건 없는 인간 형제애의 정서를 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계를 위해 더 나은 날들을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증오와 분쟁을 선동하지 않으면서, 사회생활에 합리적이고 불가결한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인 정치적 이해관계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인간 사회에 더 실효적인 공동선 증진의 문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한테나 다 그 안에서 그의 신체·인종·종족의 특성을 넘어, 그만의 존재와 동등한 어떤 존재의 현존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열·대립·배반과 복수의 진원지인 이 땅을 시민적 협력을 위해 활발하게 작업하는 현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안에서 형제애가 뿌리에서부터 무시되는 곳이라면, 평화는 뿌리에서부터 파괴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평화는 그 어떤 시대착오적 자해(自害)도 다 물리치는, 실제적이고 진정한 근대 인류를 보여주는 그런 거울입니다. 평화는 서로가 형제임을 발견하고 형제로 살기를 결심한 사람들 안에 있는 사랑을 극찬하는 그런 위대한 관념입니다. 이것이 1971년을 위한 저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시민 사회의 양심에서 새로이 울려 퍼져 나오는 목소리로서, 다음의 세계 인권 선언과도 공명합니다. “모든 인간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그들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며 서로를 향해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이것이 문명의 가르침에 따라 도달하게 된 ‘정점’입니다. 되돌아가지 맙시다. 이 확실하게 얻은 보물을 잃어버리지 맙시다. 그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의 형제”라는 이 신조에, 인간 진보의 이 목표에 우리 모두 온당히 그리고 결연하게 주의를 기울입시다. 이것이 평화인데, 이 평화는 존재하고 있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모든 사람에게 이롭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신앙의 형제들에게, 평화는 특별히 근거가 확실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인류가 위대한 노력을 기울여 도달한 탁월하고 어려운 결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모든 것에 앞서 요구되는 버팀목을, 확실성이라는 버팀목을 이 인간적 지혜에 덧붙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의심이 이 지혜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고, 약하게 할 수 있으며,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이 확실성이라는 버팀목을, 당신의 복음에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 8)라고 쓰여 있듯이, 우리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말씀에서 찾습니다. 우리는 이 지혜의 적용 가능성에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모든 이에게 참되게 형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는 용기를 불어넣는 이 일을 그리스도의 근본적 가르침들로, 행동에서 실천적이며 모범적인 황금률을 따름으로써 수행할 수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 12) 얼마나 많은 철학자와 성인이 이 황금률을 묵상했습니까! 이 가르침에 따라, 모두가 형제라는 가르침의 보편성은 사회 윤리에서 개인적 적극적 행동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믿는 이들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선포된 관념, 곧 모든 사람에 미치는 하느님의 부성(父性)이란 관념’을 최상의 명제로 인류에게 마련해 줄 위치에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확실하고 구속력이 있어야 할 참된 형제애는 형이상학적 사랑으로, 초자연적 자비로 흘러넘치는 초월적 부성(父性)을 전제하고 또 요구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용인하고 사랑하고 그분께 하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인간의 형제애, 평화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먼저 우리 형제와 화해할 때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제단에 이르는 길이 막혀 있음을 보게 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마태 5, 23 이하, 6, 14-15) 그리고 우리 믿는 이들이 평화의 촉진자들이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고 복음서가 복된 사람이라 부른 그 사람들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마태 5, 9) 형제애와 평화의 방정식에 그리스도교 종교가 부여한 것은 그 힘, 풍성한 결실과 확신입니다. 형제애와 평화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우리 신앙의 경로들이 인류와 문명이 품은 희망들의 경로들과 만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이 찾는 기쁨입니다. 이 글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2021년 4월 출간된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 실린‘제4차 평화의 날’ 담화의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전문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홈페이지(www.pu2046.kr)자료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