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미카엘) 신부 | 선교사목국 2020년 12월 14일 미국에서 첫 백신 주사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전해졌다. 이에 관해 “코로나에 대한 인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왠지 기대감과 약간의 흥분이 전해지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몇몇 가난한 나라에서는 백신을 구경조차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초반 백신 접종률이 눈에 띄게 높지 않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노쇼(no show) 백신’ 즉 잔여 백신을 정부에서 정해준 나이와 그에 따른 접종 시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신청해서 접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그래서 신청을 했고, 대략 한 달여쯤 드디어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날이 5월 27일 목요일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교구청으로 출근을 해서 사무실에 놓여 있는 신문을 보았다. 두 가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인도에서 코로나가 극심하여 성직자 160여 명이 선종하였다는 기사였다. 하루에 신부님들 4명꼴로 선종하셨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기사였고, 또 하나는 교황님과 함께 나눈 백신 나눔 운동에 관한 홍보내용이었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백신이 있어도 맞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백신을 구입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고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복잡한 생각이 들 때 전화를 받은 것이다. 국내생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106.8만회 추가 출고된 17일 오전서울 서대문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은 뒤 대기하고 있다. (사진= 전남일보) 연락을 받고 왠지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 소풍가방에 좋아하는 과자와 초콜렛을 구입해서 챙겨 놓고 다음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 잠자리에 들기 전 그런 기대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오전 내내 기분 좋은 컨디션으로 오전 일과를 보냈다. 드디어 오후, 예약한 시간 병원으로 향했다. 막상 접종을 앞두니 약간은 긴장이 되었지만 신분증 확인과 서류를 작성한 후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드디어 백신 접종을 하게 되었다. 주사를 놓아주시는 의사분께서 바늘이 조금 두꺼워 아플 수 있다고 하셔서 순간 쫄았지만, 지금까지 맞은 주사 중에 가장 아프지 않은, 맞은 것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 접종 후 이상 반응이 있는지 15분간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15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갑자기 지난달 해발 575m인 산 정상에 가족과 함께 올랐던 순간이 떠올랐다. 산 정상에서 70대로 보이는 어르신 세 분께서 정상에서 쉬고 계셨고 그중 한 분이 전화 통화를 하시는데 소리가 크셔서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한 가지 내용이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다. 통화를 하시면서 상대방에게 하시는 말씀이셨다. “창피해 창피해 참으로 창피해, 나라가 백신도 못구하고 에휴~” 그때가 2021년 4월이었다. 이미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들도 백신 공급에 차질이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던 시기였다. 옆에서 듣던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창피하시다는 말씀이세요?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르세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지 모르세요? 마스크를 착용하셨지만 어르신께서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외출을 하시고 등산도 하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건데, 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뭐가 그리, 그리고 도대체 누구에게 창피하시다는 말씀이세요? 지금 유럽 선진국들조차 몇몇 도시들은 여전히 통행 금지와 폐쇄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대단한지 왜 그렇게 굳이 부정하고 외면하며 곡해를 하시려고만 하세요?’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르신의 의견(?)을 존중해 드려야 한다는 착한(?) 심성이 내 안에 꿈틀거려 침착하고도 차분하게 산을 내려왔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 어르신은 도대체 누구에게 대한민국이 창피한 것일까? 혹시 우리만 살겠다고 우리 백신만 챙기고 코로나에 대응하기에 의료나 기술적으로 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를 북녘땅에 있는 같은 민족들을 위해서 보낼 백신을 따로 준비하지도, 아예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며 우리 것도 부족할지 모르는데 왜 나눠야 하느냐며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악마적 이기주의로 변해가는 스스로가 창피하다는 말씀이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