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베드로) 신부 | 민족화해위원장 북한 사회과학출판사가 발간한 『정치사전』은 ‘고난의 행군’을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1938년 12월부터 100여 일간 ‘중국 지린성[吉林省] 몽현현 남패자에서 압록강 연안 국경지대까지’ 이어간 행군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역사는 김일성의 항일빨치산이 일본군의 추격을 뿌리치면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가열한 전투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모진 추위, 가슴을 넘는 눈길과 식량난’을 겪으면서 행군을 이어나갔다고 가르칩니다. 북한은 국가의 정통성을 항일무장투쟁의 경험에서 찾고 있는데, 따라서 ‘고난의 행군’은 북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국가적 구호로 다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1990년대가 되면서 사회주의 경제권이 몰락한데다가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매우 심각한 자연재해까지 이어지면서 북한에서 참혹한 식량난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1996년 1월 1일 〈로동신문〉 등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모자라는 식량을 함께 나눠 먹으며 일본군에 맞서 투쟁한 항일빨치산의 눈물겨운 고난과 불굴의 정신력’을 상기시키며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합니다. 공장, 광산, 기업소 등은 생산을 중단했고 배급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던 이 시기에 북한 전역에서 굶어 죽은 사람의 수를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까지도 추산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1890), 고흐 지난해 10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표하신 사회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사회적 존재인 인류가 세계적 연대로 공동선을 실현해나가야 한다는 권고를 담고 있습니다. 회칙에서 교황님은 복음서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이웃에는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차이를 내려놓고 고통 앞에서 그 어떤 사람에게라도 가까이 다가가라고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나는 도와줄 ‘이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다른 이들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모든 형제들」 81항) 최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의 주요 행사에서 ‘고난의 행군’을 다시 언급했다고 합니다. 경제제재와 자연재해에다가 예기치 않은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북한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북한의 지도자가 당의 고위 간부부터 말단 책임자까지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자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의 주민들뿐 아니라 남한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