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희 안젤라(연세대 정치학 박사수료) 대치하고 있는 양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둘은 합리적인 존재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더불어 상대방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익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 둘이 어떤 관계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 둘은 각자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방법을 고심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다. 믿을 수 있는 상대인가, 협력할 수 있는 대상인가 여부에 따라 양자가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임이론(game theory)이라 불리는 분석틀은 양자가 어떤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갈등과 협력이라는 양극단의 스펙트럼 안에서 이익이 다르게 정의된다는 점을 확인케 한다. 죄수와 사냥꾼 게임이론 중 신뢰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죄수의 딜레마로, 범죄 혐의를 받는 두 명의 공범자를 각기 취조하면서 조건부로 자백할 기회를 준다. 두 명의 공범자가 모두 자백하면 3년의 형량을 받고,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침묵한다면 1년 정도 형량을 받는다. 만약 한 명이 자백하고 상대방이 침묵하면 자백한 이는 석방되지만 침묵한 이는 5년 이상 형량을 받는다. 가장 좋은 상황은 상대방은 혐의를 부인하고 자신만 자백해 석방되는 경우다. 양자가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할수록 침묵보다 자백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신뢰의 문제, 배신에 대한 불안으로 양자는 개인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자백하여 최적의 결과인 석방보다는 3년의 형을 받는다는 것이 이 게임의 요지이다. 두 번째는 사슴 사냥으로 불리는 게임이다. 두 명의 사냥꾼이 사냥터에 같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사냥터에서 토끼와 사슴을 잡을 수 있으며 둘은 각자 사냥할 수도 있고 협력할 수도 있다. 토끼를 잡으려면 혼자 사냥해도 충분하지만, 사냥으로 얻어낼 수 있는 고기 중량이 적다. 사슴을 사냥하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둘이 힘을 합쳐야 한다. 사슴의 고기 중량은 토끼보다 몇 곱절은 더 크다. 홀로 사냥할 수 없는 만큼 둘이 고기를 나누어야 한다. 기여 정도에 따라 나눌 수 있는 고기 중량이 달라지나 아무리 적게 배분받는다고 해도 토끼를 잡아 얻는 것보다는 크다. 이럴 경우 합리적인 사냥꾼이라면 혼자 토끼를 사냥하는 것보다 힘을 합쳐 사슴을 잡는 게 나으며, 서로 협력하는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게임이론과 남북관계 이 두 가지 사례가 남북관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우리는 북한과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 이제까지 한국 정부와 북한 정권의 대북 및 대남 정책은 죄수의 딜레마와 사슴 사냥을 오가며 이루어졌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양자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궁극적으로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선택을 하게 되지만, 결국 모두에게 최적의 결과값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흐르게 된다. 예컨대 남북이 치열하게 전개했던 냉전시대 체제 경쟁이나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군력 증강이 그렇다. 또 남북이 모두 군력 축소에 합의하여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사회복지로 전용한다면, 남북한의 후생이 높아지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으나 양자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서로 협력을 논하면서도 군축을 포기한다. 반면 사슴 사냥 게임에서 남한과 북한은 협력을 도모한다. 양자의 협력이 각개전투보다 더 큰 이익을 담보한다면, 상대방이 어느 정도 이익을 가져가건 자신보다 그 이익의 크기가 크던 상관 없다. 특히 경제적 이익과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 및 기술이 합쳐질 경우 매우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이 경제협력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수취하는가와 상관없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임금과 재화를 가져갈 수 있는 반면, 남한 역시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 활동이 가능하기에 북한이 얼마나 더 이익을 얻게 되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더 큰 경제적 이익을 담보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선택이 의미가 없다는 점이며, 협력하지 않을 때보다 협력했을 때 이익이 높다는 점에만 주목한다는 점일 테다.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 우리는 여태까지 어떤 선택을 해 왔는가 생각해보면, 결국 상호 신뢰의 부족이 남북한의 사슴 사냥을 죄수의 딜레마로 전환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까지 남북한 경제협력의 발목을 잡아 온 ‘퍼주기’ 논란이나, 개성공단의 중단 사유 중 하나로 거론된 북한 노동자 임금의 핵무기 개발에 전용했다는 의혹 제기 등은 북한과 협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이 있어도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의 기저에는 북한보다는 남한이 언제나 더 큰 이익을 반드시 도모해야 한다는 전제가 강하게 작용한다. 극단적으로는 북한에 어떠한 이익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갈등적인 사고로도 빠지게 된다. 이런 갈등적 사고는 한쪽이 파멸할 때 상대방이 모든 이익을 독식할 수 있는 제로섬 게임(zero-sum)으로도 치닫게 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 여부는 주어진 환경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인식과 신뢰에 따르는 행위자들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게임 이론은 우리에게 남북관계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게임을 북한과 하게 하는지 여러 생각거리를 던지게 한다. 잠시 남한과 북한은 같이 사슴을 잡는 사냥꾼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분단이라는 교도소에 갇혀 있는 죄수로 지낸 경우가 많았다. 물론 학술적으로 정밀하게 논한다면 남북관계의 게임을 바꾸거나 최적의 결과물을 내게 하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조건을 설정하거나 특정 행위를 반복하게 하는 등 여러 옵션이 붙는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가짐이라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판에 종속되기보다 다시 사슴 사냥으로 판을 바꾸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린 앞으로 우린 북한과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 선택과 결정의 문제 앞에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