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다(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내 이름은 꼬마야.아주 자그맣게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이지.내가 태어나던 날 아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어. 물론 쌍둥이 동생까지 태어나 그 기쁨은 더 컸단다. 사람들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나와 내 동생에게 말했어. “우리를 구해 주고, 평화를 가져다주겠지.” “우리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려주렴.”나는 사람들의 기쁨에 보답하고 싶었어. 물론 내 동생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지. 7월의 어느 맑은 날, 나는 동생과 떨어져 여행을 떠나게 되었어.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어.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은 푸르렀고, 쏟아지는 햇살 아래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어. 여행하기 딱 좋은 날이야. 인디애나폴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배가 출발할 때는 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 인디애나폴리스는 몇 날 며칠을 느릿느릿 바다를 헤엄쳤어.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와 끼룩끼룩 울려 퍼지는 갈매기들의 노랫소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줬지.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지루해질 때쯤 인디애나폴리스는 티니안 섬에 도착했어. 바다 내음만 맡다 나무와 풀, 흙냄새를 맡으니 살 것 같아. 티니안 섬에 도착할 무렵에는 살짝 배 멀미를 해서 몸이 좋지 않았거든. 그 덕에 며칠 동안 잠만 잤어. “꼬마야, 일어나.”한밤중에 누군가가 나를 깨웠어. 시계를 보니 밤 1시 45분이야. “꼬마야,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어디로 가나요?” “일본, 히로시마.”일본, 히로시마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무작정 집을 나섰어. 8월의 밤공기가 후텁지근했지만, 밤 산책이 나쁘지 않았어. 에놀라 게이와 승무원들 Ⓒ위키피디아 우와! 굉장해. 비행기 세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비행기는 처음 타 봐. 나는 에놀라게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행기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어. 나를 반갑게 맞이한 조종사 폴 티비츠가 ‘에놀라게이’는 자기 엄마 이름이라고 알려줬어. 비행기 이름을 엄마 이름으로 짓다니 참 근사해. 나도 근사한 일을 할 거야. B-29 폭격기에 붙여진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은 폴 티비츠 어머니의 이름이다 Ⓒ위키피디아 부우웅, 에놀라게이는 어둔 밤하늘을 날아올랐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사이를 가르며 날아가는 에놀라게이와 나. “하늘을 나는 일은 근사해요.”신이 나서 소리쳤어. “꼬마, 너도 혼자서 날게 될 거야.”폴 티비츠 옆에 있던 토마스 페레비 대위님이 말했어. 내가 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대위님이 거짓말을 한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바로 그 순간, 바다 깊은 곳에서 붉은 해가 쑤욱 솟아올랐어. 마치 대위님 말이 맞다고 맞장구치듯이 말이야. 어둠에 잠겨있던 세상이 빛으로 반짝였어. 바다와 하늘도 반짝였고, 나무와 꽃들도 반짝였고, 집들과 사람들도 반짝였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지금 시각 오전 7시 25분, 히로시마, 날씨 맑음.”에놀라게이는 8.839m 상공을 시속 312Km로 히로시마의 하늘을 날았어. 시코쿠 섬의 북쪽 끝자락을 비행하던 에놀라게이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꼬마야, 저기 저 다리 보이지? 아이오이 다리란다. 넌 저 다리를 향해 날아갈 거야.”난 대위님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어. “8시 15분 10초, 꼬마야, 목표물은 아이오이 다리야. 다리를 향해 곧장 날아가야 해.” “걱정 마셔요.”난 위풍당당하게 대답했어. 햇볕이 내려앉은 히로시마가 밝게 빛나고 있어. “8시 15분 15초.”“8시 15분 16초.” “8시 15분 17초 발사.”나는 에놀라이게이를 떠나 아래로 아래로, 아이오이 다리를 향해 날아갔어.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날고, 마실 나온 개들이 서로의 등을 비볐어. 텃밭에서 호미질하던 사람이 이마를 닦았어. 정확히 43초를 날았어. 콰과쾅!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이오이 다리에서 280미터 벗어나 사이쿠마치(현재, 오테마치)의 시마병원 580미터 위에서 나는 폭발했어. 밝은 섬광과 굉음은 엄청난 열과 방사선을 내뿜었어. 그 다음에는 거센 폭풍이 몰아쳤지. 폭풍은 땅 위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했어. 집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사람과 개들, 나무와 꽃들은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어. 히로시마는 칠흑 같은 암흑과 무거운 침묵에 사로잡혔어. 이내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지. 움직이는 모든 걸 태워버릴 듯 활활 타올랐어. 살아남은 사람들은 열 폭풍에 녹아내린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듯 들고 다녔어. 온몸이 불에 타 조금의 스침에도 너무너무 아팠거든. 불길이 타올랐지만 사람들은 몹시 추워서 덜덜덜 떨었어. 이 소식을 듣고 히로시마에 도착한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도우러 온 수많은 사람들마저 방사선에 오염되고 말았어. 물론 나무와 꽃, 새들과 메뚜기까지도 말이야. 방사능에 오염된 45만 명 중 13만에서 14만 명이 90여 일 안에 모두 죽었어. 방사능에 오염된 채 살아남은 사람도 해족증, 백내장, 재생 불량성 빈혈, 급성 백혈병, 유산, 불임, 암에 걸렸어. 그날은 1945년 8월 6일 월요일이었어. 사람들은 ‘꼬마’가 뭔지 알지 못했단다. 리틀 보이(Little Boy, 꼬마)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에 부여된 코드명이다 Ⓒ위키피디아 2005년 3월 7일 반핵평화운동가 김형률씨가 병상에서 외쳤어. 그래, 1945년 8월 6일의 꼬마는 죽지 않았단다. 살아남은 피폭 당사자의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되었고,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지. 피폭 피해자 김형률씨는 2005년 5월 29일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말이야. 그런데 나는 두려워. 나를 닮은 꼬마가 자꾸자꾸 태어나고 있다는 게 말이야. 혹시라도 오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건 아닐까,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