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 (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수료) “북한에서는 남자친구를 뭐라고 불러요?” 최근 주변에서 여러 번 받은 질문입니다. 언론을 통해 북한 당국이 이른바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남한식 말투와 옷차림 단속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탓입니다. 게다가 남자친구를 ‘남친’이라 부를 수 없고, 남편에게 ‘오빠’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원래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친구보다 동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남자 사람 친구를 북한에선 ‘남자동무’ 혹은 ‘남동무’로, 여자들을 ‘여성동무’ 혹은 ‘여동무’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애인이라고 하거나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은어 아닌 은어를 씁니다. 예를 들어 “너 남자(혹은 여자) 있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건 남친(여친)을 의미하죠. 마스크를 쓰고 불꽃놀이 관람하는 북한 청년들 Ⓒ평양 조선중앙통신 옛날얘기라고요? 네, 맞습니다. 10여 년 전 얘기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대다수는 남친보다 애인이라는 표현이, 남편을 ‘오빠’라 하기보단 ‘세대주’로 부르는 것을 더 자연스러워합니다. ‘MZ세대’를 북한식로는 ‘장마당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그 이후에 태어나 북한이 자랑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시책’의 혜택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입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영상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남한의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이 이전 세대에 비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에 남한의 드라마와 음악 등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는 2000년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남조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때였습니다. 심지어 영상물을 판매하던 장사꾼들은 “원래 이거 우(위)에서만 보게 되어있는 건데, 몰래 복사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올 때 장군님께 선물로 드린 것이고 간부들도 다 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봐도 괜찮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그럴듯한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고, 직장이나 학교에 가서도 친한 친구들끼리는 편하게 드라마 내용을 나눌 정도로 느슨한 분위기였습니다. 평양의 젊은 남녀 Ⓒ셔터스톡 또 좋은 건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적들의 문화침투’를 경계해야 한다고 무수히 교육받아 왔지만, 정작 ‘남조선’의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당시 드라마의 분위기가 ‘권선징악’의 결말이 많았고,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고 좋은 일을 하면 꼭 복을 받는다’는 결말은 북한 사람들에게도 십분 공감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정부는 자본주의사회가 ‘돈밖에 모르는 썩고 병든 세상’이라고 선전했으나, 영상 속 자본주의사회인 남한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은 달랐습니다. 늘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남자 주인공에 익숙했던 북한 여성들에게 부드러우면서도 다정한 ‘남조선 남자’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남한 드라마를 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명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런 여성들의 동경은 북한 남자들의 변화를 유도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평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문화어’로 규정했으나, 부드럽고 상냥한 남한식 말투를 동경하는 젊은 청년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오죽했으면 2000년대 중반 남한 말투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도 생겼습니다. 한 여성이 대학 동기인 남성 동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집에 계시던 어머니가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여성은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철수 씨 친구인데요. 혹시 철수 씨 집에 있나요?”라며 남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억양도 달랐고, 또 북한에선 사람의 이름 뒤에 ‘씨’라는 의존명사를 붙이지 않습니다. 북한식으로는 “어머니~ 철수 동무 집에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철수 어머니는 한술 더 떠서 아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철수야! 서울에서 전화 왔다. 받아라!” Ⓒ게티이미지 이번에는 오빠라는 단어를 볼까요? 북한에서 오빠라는 호칭은 친오빠를 의미합니다. 그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요? 바로 ‘동지’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은 본인의 나이를 기준으로 동갑이나 아래일 경우 모두 ‘동무’로, 윗사람일 경우 모두 ‘동지’로 통칭합니다. 물론 과장, 부장, 지배인, 당비서 등의 직급을 붙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장 동지, 혹은 과장 동무. 그런데 성인이 되기 전 유년기나 고등학교까지는 친오빠가 아니어도 오빠라는 말을 씁니다. 대신 ‘오빠’ 앞에 꼭 이름을 붙입니다. 철수오빠, 강철오빠 등등. 북한이 왜 ‘남자친구’ 혹은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것을 남한식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지 이해되셨나요? 최근에는 태어나는 아기들의 이름을 남한식으로 짓는 것도 단속대상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남한식 이름으로 거론된 것이 정서, 유리, 건우, 민우 등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북한에선 최고 지도자와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즉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지도자로 등장한 이후 전국에 ‘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성씨와 상관없이 무조건 개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는 일성, 정일, 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