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한신대 초빙교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한미정상회담(2021.05.23.) ⒸBBC 지난 5월 23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윤곽이 드러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는 데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함으로써 향후 협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대북특별대표에 북한의 거부감이 적은 온건 성향의 성 김 대사를 임명해 북한에 대한 적극적 대화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이 바라고 있는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나의 외교안보팀이 핵문제와 관련한 북쪽의 정확한 협상조건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실무협상에서 북한의 입장이 확실해진다면 정상회담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메시지이다. 또한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추진”하기로 함으로써 기존의 압박 일변도 정책을 유연하게 바꾸었다. 북한의 반응은 6월 1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발언이 전부이다. 미국의 실무 접촉 제안에도 북한은 뜨악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왜 대미협상에 나서지 않는 걸까? 김정은의 경제 우선, 현실주의 노선 김정은은 2012년 4월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천명한 이후 경제 우선 정책을 추진하였다. 개혁 · 개방에서도 전임자 김정일에 비해 적극적이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2014년부터 본격 실시했는데, 이 제도는 경제 운용에 있어서 중앙의 권한을 축소하고 기업의 권한·책임을 확대하며 시장 경제 활동을 상당 정도 허용하는 조치이다. 또한 2013년부터 지방 각지에 22곳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대외 개방을 모색하였다. 이는 개방 지역의 대폭 확대, 투자유치 경로의 다양화 등에서 기존의 특구정책보다 진일보한 시도이다. Ⓒ연합뉴스 김정은은 집권 후 일관되게 당 · 정 · 군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는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천명하며 김정일 시대 비정상의 상징인 ‘선군 정치’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김정은은 변화된 현실에 맞추어 노동당 규약도 바꾸었다. 북한은 헌법 11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함으로써 당 우위의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당 규약은 최상위 규범이라 할 수 있는데, 8차 당대회 이후 당 규약의 주요 내용을 바꾸었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으로 제시됐던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 과업 수행”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대체하였다. 또한 규약 서문의 “조선노동당은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지지 · 성원”한다는 내용이 사라졌고, “민족의 공동 번영을 이룩”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규약 본문의 ‘당원의 의무’에서도 “조국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대체 표현 없이 삭제되었다. 이는 1945년 12월 “민주기지론”(북한은 남조선혁명과 조선반도 공산화의 전진기지라는 이론)을 제창한 이래 유지되었던 “북한 주도 혁명통일론”의 사실상 폐기이자 남북관계 인식 틀의 근본적 변화를 뜻한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 위기 김정은의 의욕과 관계없이 가용 자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북한 경제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나아지기는커녕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로 생필품이 부족해지고 쌀값이 폭등하는 등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안남북도를 비롯한 내륙지방에서는 아사자들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13일 북한이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별 검토’(VNR)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봉쇄,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곡물 생산이 부진하고 에너지와 필수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연간 700만t 곡물 생산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면서 “2018년 생산량은 약 495만t으로 지난 10년 동안 최저치였다”고 밝혔다. 또한 가뭄으로 인한 수력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어 가뜩이나 어려운 에너지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실에서 2018년 하노이 회담의 실패는 김정은 입장에서 뼈아플 것이다. 인민들에게 북미협상 타결을 통한 경제난 해결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고서는 막상 빈손으로 귀국했으니 말이다. 리수용 당 국제부장과 리용호 외무상의 2019년 말 해임, 그리고 8차 당대회에서의 친동생 김여정의 강등과 정치국 후보위원 탈락, 최선희 외무부상 강등도 협상 실패에 따른 책임 추궁의 불가피한 인사 조치였을 것이다. 최근 수뇌부 간부들에 대한 잦은 책임 추궁도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의식한 조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가시적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대미 협상에 나설 수 있겠는가? 북한이 대외 협상에 나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협상파들의 입지를 넓혀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에게 절실히 필요한 식량 · 의약품 등을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는 게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 간 교류협력을 거쳐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다.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대북지원을 하는 것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대외 협상에 나서게 하기 위해 교회는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