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OO(소피아) (북한이탈주민) ▲KBS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진 ‘전원일기’와 마을 공동체의 향수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MBC에서 방영된 최장수 드라마로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반면, 주인공으로 특별히 두드러지는 인물은 없다. 양촌리 마을 사람들 전부가 주인공이고 그리고 그들의 가족마다 독특한 에피소드가 있다. 20세기 말엽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전원일기’에는 우리나라 농촌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의 결속력과 유대가 잘 녹아있다. 마을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마을 사람들은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마을 청년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마을의 문제를 의논하고,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끼리 모여서 걱정하고, 아이들은 부모들의 일을 돕는다. 농촌 총각 결혼 사기 사건이나 투자사기 등 마을 주민이 피해를 보면 이웃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거나 다독여준다. 한마디로 ‘전원일기’는 ‘이웃’의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도시로의 인구이동과 마을 공동체의 해체 한반도에는 오랫동안 농경사회 문화가 정착되어 왔고, 한국에서는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농경사회의 잔재와 이에 따른 농촌 공동체 문화가 오랜 기간 남아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대가족과 마을 공동체가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마을 공동체가 나서서 도움을 주고 모두가 축복했다. 나이 들어가면서는 대가족 체제의 어른으로, 마을의 원로로 존중받았다. 고령에 따른 질병과 사망에 대해서는 농촌 공동체가 부담을 함께 나누었다. 하지만 농촌 공동체 문화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사라졌다. 이는 농촌 인구의 도시에로의 대대적인 이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전원일기’가 종영된 때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농촌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농촌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공동체 의식은 상당히 퇴색되었다. 국토교통부의 ‘2013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인구는 4천683만7천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 5천100만여 명의 약 92%를 차지하였는데, 오히려 이제는 도시 인구가 농촌으로 귀농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농촌이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본격적인 창업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는 농촌의 공동체적 정체성은 사라지고, 개인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농촌으로의 이주 동기가 되면서 농촌도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와 공동체 의식의 퇴색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가족 공동체의 해체도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산업화와 탈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대가족 체제와 마을 공동체라는 가족과 이웃을 통한 자연적 연대가 사라지고 있다. 대가족의 해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핵가족마저 무너지고 있다. 독신 가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인데,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1980년 4.8%에서 2016년 27.9%로 크게 늘었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증가세로 이제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가족 체 제가 지배적이던 전통 농경사회와 비교할 때 경제적 토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며,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대규모 이동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는 농촌 공동체와 자연적 연대의 바탕이 된 유교적 공동체 의식 대신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개인주의라는 서구적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우리는 ‘공동체 의식의 퇴행 과정’ 또는 ‘공동체 의식의 퇴색’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결국 드라마 ‘전원일기’를 관통했던 농촌 마을 중심의 공동 체 의식은 앞으로 더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원일기’는 역사다. ▲북한 묘향산 주변 농촌(출처 AP=VOA) 출발부터 다른 북한의 공동체주의 한반도의 북쪽, 북한 땅에서는 공동체 의식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해방 직후 북한에서도 농업이 경제의 기반이었다. 김일성의 토지개혁으로 땅을 무상으로 부여받은 농민들은 생산 의욕을 갖고 농업 생산에 힘을 쏟았고, 이런 사회적 배경으로 당시 북한에서도 농촌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문화가 사람들의 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6.25 전쟁 이후 북한 지역은 폐허가 됐고, 많은 남성 인구가 전쟁에서 사망하면서 농촌에는 부녀자와 노약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더이상 가족 단위로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노동력과 농기구, 가축을 함께 이용해야 했고,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농촌 협동화를 수용했다. 이때가 북한에서 가장 공동체 의식이 높았던 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196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농촌으로부터 도시에로의 인구 이동이 진행됐고, 이런 배경 속에서 공동체 문화의 빠른 변화도 나타났다. 이 시기에 도시에서는 ‘천리마운동’이, 농촌에서는 ‘청산리방법’이 사회주의적 공동체 문화의 표본으로 부각됐다. 특히 김일성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연안파를 비롯한 권력층 내부의 종파들과 군벌 세력들을 말끔히 숙청했고, 이때부터 북한에는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사회주의적 공동체 의식’의 본질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 확립은 김씨 일가 3대 세습 독재의 시작이었고,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는 북한 주민의 공동체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일성 1인이 북한의 모든 권력을 독차지할 즈음에 나온 대표적인 북한 가요가 바로 ‘세상에 부럼 없어라’(1961년)이다. 이 가요의 노랫말 중에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 다 친형제”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래 가사는 사회주의적 공동체 의식을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북한 주민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상 교육을 진행하거나, 외부 세계에 북한 체제의 이른바 ‘우월성’을 선전할 때 북한 특유의 공동체론을 설파한다. 그것은 바로 수령 또는 최고 영도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대가정론’이다. 사회주의 대가정론에 따르면 “수령은 곧 태양이고, 인민의 어버이”이며 “모든 인민은 어버이 수령의 자식이고, 따라서 인민들은 서로 친형제”이다. 그리고 북한의 유일 집권당인 노동당은 수령과 인민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살아가는 커다란 ‘집’이다. 수령과 당, 인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 이것이 북한이 그토록 자랑하는 ‘사회주의 대가정’이다. 김일성 시대에는 김일성이,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이 ‘아버지’였고, 김정은 시대에는 김정은이 북한 주민의 ‘아버지’이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특히 청소년들은 지금도 ‘세상에 부럼 없어라’ 노래를 부른다. 물론 가사에서 김일성 대신 김정은을 넣어 “우리의 아버진 김정은 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달라졌다.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 화면 캡처우리집 이야기’와 ‘사회주의 대가정’ 북한 영화 ‘우리집 이야기’(2016)는 북한이 선전하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주제로 한 예술영화다. 2016년 8월경, 북한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우리집 이야기’라는 제목의 새 영화를 제작해 내놓았다. 그해 9월 북한 매체는 새 영화를 소개하면서 “강선땅의 ‘처녀 어머니’를 원형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부모 없는 아이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애지중지 키우는 처녀의 형상을 통하여 조선에 넘쳐나는 따뜻한 정, 새 세대 청년들의 아름다운 사상정신 세계를 진실한 예술적 화폭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이 영화 역시 다른 북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문화적 수단이라고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리정아가 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 처녀의 몸으로 은정이네 남매의 보호자가 되어 온갖 정성을 다하는 얘기를 그렸다. 은정이와 나이 차이가 몇 살 나지 않는데도 스스로 큰언니 겸 엄마의 역할을 다하느라 애쓰는 정아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은정이와 갈등도, 오해도 있었지만, 따뜻한 사랑과 진심으로 은정이의 마음을 얻기도 한다. 정아의 노력에 감동한 간부들과, 청년동맹 조직, 이웃들, 친구들이 모두 나서서 정아의 아이들을 친자식,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사회주의 대가정의 위대함’을 선전한다. ▲저작권자 (c) 연합뉴스북한이 본보기로 내세운 ‘처녀 어머니’ 이 영화는 북한 남포시의 장정화라는 처녀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실화 영화이다. 어느 나라에나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북한에도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노동당 입당이나 출세, 표창 등을 목적으로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꽤 많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북한은 왜 장정화를 특별히 내세우고, 그의 스토리로 영화까지 만들었을까. 그것은 2015년 평양에서 열린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김정은이 장정화의 ‘미담’을 듣고 그를 가까이 불러 다독여주고 ‘처녀 어머니’라는 호칭을 붙여줬기 때문이다. 장정화가 김정은을 만났을 당시 나이는 20세로, 7명의 고아들을 데려다 키운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정은이 극찬하고 전 주민의 귀감으로 내세운 장정화는 일약 북한 최고의 유명 인사가 됐으며, 북한 청년들이 받을 수 있는 표창 중 최고의 훈장인 ‘김정일청년영예상’도 받고, 그 다음해에는 노동당에 입당까지 했다. 즉 북한은 장정화를 본보기로 내세워 과거에 비해 상당히 이완된 체제 결속력을 강화하고, ‘사회주의 대가정’을 복원시키고자 한 것이다. ‘수령절대주의’와 공동체의식의 변질 이런 목적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우리집 이야기’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의 부럼 없어라’ 노래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은정이네 가족, 지금은 정아네 가족 일기장인 ‘우리집 이야기’ 책에 주인공 정아가 “우리의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이라고 쓰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난다.결국 이 영화도 사실상 ‘김정은 우상화’ 영화이고, 북한 사회를 ‘화목한 대가정’이라고 선전하려는 목적에서 제작됐다. 물론 북한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다. 그곳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신의를 지키면서 살아간다. 영화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한 국민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체제 선전용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북한의 ‘사회주의 대가정’론은 공동체의식의 왜곡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북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학습 차원에서 보는 것은 괜찮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진심으로 감동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한민족의 공동체의식은 남한에서는 퇴색되었고, 북한에서는 변질되었다. 전통적인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식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Nostalgia(향수)로만 존재한다. 이제는 우리가 4차 산업시대와 글로벌 시대에 맞은 새로운 사유와 인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